주변의 데시벨이 높거나 어수선해도 집중하게 만드는 음식, 한국인들에겐 불고기가 있다. 버거, 샌드위치, 덮밥, 비빔밥, 전골에 심지어 오삼, 콩나물, 액젓까지…. 불고기란 말이 앞뒤에 붙는 음식의 레시피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받고 있다는 반증일 게다.
생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것, 양념한 소고기를 석쇠 위에다 바싹하게 구운 것, 양파나 버섯 같은 채소를 곁들여 자작한 육수와 함께 끓여 먹는 것 중 당신의 불고기는 어떤 모양인가. 《불고기-한국 고기구이의 문화사》는 이처럼 미묘하게 다른 음식이 불고기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까닭과 그럼에도 같은 음식이라고 인식되는 이유, 그리고 이런 변천의 배경이 되는 한국사회와 입맛의 변화를 추적한 책이다.
‘불고기’라는 단어가 최초로 사전에 오른 것은 1950년 발행된 《큰사전》에서인데, ‘숯불 옆에서 직접 구워가면서 먹는 짐승의 고기’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1973년 발행된 《새국어사전》에는 ‘소고기 따위의 살코기를 얇게 저며 양념을 하여 재웠다가 불에 구워 먹는 요리’로 돼 있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저민 고기를 양념하여 구웠다’는 것 정도로만 소개하고 있다. 직화로 굽는 것인지, 소고기인지 아닌지, 살코기인지 아닌지 등을 밝히지 않고 있다. 사전조차 똑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불고기라는 음식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1922년 4월 《개벽》에 실린 현진건의 소설 ‘타락자’다. 1910년에서 1945년까지 대도시에서 육류 소비가 급증했다. 고기 굽는 연기 때문에 모란대의 소나무가 고사할 정도였다고 한 것을 보니 평양의 불고기가 깨나 유명했던 모양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불고기의 유래는 고구려 시대의 통돼지 구이인 ‘맥적(貊炙)’에서부터 소고기 구이인 ‘설야멱(雪夜覓)’, 소고기에 잔칼집을 내 구운 ‘너비아니’로 이어진다. 그 후 설야멱이 너비아니로 바뀌는 과정에서 ‘설중소육(雪中燒肉)’과 ‘소육(燒肉)’이라는 명칭이 혼재돼 쓰였다. 소육은 직역하면 ‘구운 고기’다.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며 변화를 거듭했는데 공통점은 미리 양념을 해서 구웠다는 것. 이것이 오늘날까지 알려진 불고기의 면면이다.
현재 불고기는 소고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기 두께도 덩이부터 얇게 썬 것까지, 양념 또한 생고기에서 너비아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불고기라는 단어는 블랙홀처럼 너비아니의 의미도 흡수해버렸다. 1970~1980년대에 육류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불고기는 더욱 진화한다.
레시피의 범위도 확장됐고, 그 의미도 불에 익힌 모든 종류로 확대됐다. 느슨하게 연결된 불과 고기의 두 단어 사이에는 시대별로 굽고, 끓이고, 볶는 다양한 조리법이 넘나들었다. 모호한 이름 덕분에 역설적이게도 불고기는 구속받지 않고 창의성을 발휘해 자유롭게 변신을 거듭할 수 있었다. ‘불+고기’라는 느슨한 조건만 충족하면 재료가 무엇이든 불고기로 만드는 유연성이 한국인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이다.
외국인들은 불고기와 갈비 등 양념육 직화구이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테이블 위에서 직접 지글지글 구워 먹는 시즐감(Sizzle感)이 매력적인 모양이다. 불고기는 세계 어느 나라의 육류 요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강한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식 세계화 가능성의 중심축인 양념육 직화 불고기가 멍들고 있다. 왜일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불고기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만약 오바마가 한국에 온다면 자신있게 소개할 수 있는 불고기 음식점이 몇 곳이나 될까. 불고기의 공식 영어 표기는 ‘Bulgoge’다. 그런데 해외에 나가 메뉴판을 보면 표기가 제각각이다. 국내의 수많은 음식점 간판에 불고기를 전면에 내세운 곳은 그다지 많지 않다.
불고기가 K푸드의 첨병이 되려면 정체성 확립이 우선이다. 우리의 문화이고 역사인 불고기를 정작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대접하고 있을까. 이젠 불고기의 미래를 얘기할 차례다. 불고기는 또다시 진화할 것이므로.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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