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아기 폭군' 아닌 진정한 왕이 되려면

입력 2021-06-03 17:36   수정 2021-06-04 02:40

마약 거래자, 폭력적인 남편, 짜증 가득한 직장 상사, 책임 회피에 능한 정치인의 공통점은? 모두 어른인 척하는 소년들이다. 미성숙한 남성은 통제와 위협, 적대적 행동을 힘이라고 착각한다. 그들의 ‘그릇된 남성다움’은 실제로는 상처받은 소년의 연약함이다.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로버트 무어는 남성심리학 분야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쌓아왔다. 그는 《왕, 전사, 마법사, 연인》에서 20세기 말부터 위기에 봉착한 남성 정체성의 위기에 대해 색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많은 사람이 현대 가족체제의 붕괴가 초래한 아버지의 나약함이나 남성성의 부재에 대해 걱정한다. 하지만 그는 가부장적인 남성성의 부재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성년의식’ 부재라고 강조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소년이 성인 남자가 되는 입문 의식이 있었다. 서구식 문명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성년의식은 대부분 없어지고 성숙한 남성성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그는 설명한다.

무어는 “가부장적인 남성은 딸이나 부하 여직원뿐만 아니라 아들이나 부하 남직원이 완전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유능한 부하 직원을 참을 수 없는 상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 가부장제는 소년 심리의 표출이며 남성성의 어둡고 광적인 면일 뿐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렇다면 소년 심리를 남성의 심리로 변환할 방법은 없을까. 카를 융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저자는 융의 ‘집단 무의식’ 개념을 적용한다. 집단 무의식이란 인류의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 내려온 본능적 사고, 느낌, 행동 패턴을 뜻한다. 인간이 태어나면 엄마의 존재를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본능적으로 찾듯이 이런 정보는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는 것. 남성의 원형 또한 왕, 전사, 마법사, 연인의 특징으로 내면에 잠재돼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권력을 상징하는 왕, 진취성을 상징하는 전사, 지적 탐구심을 상징하는 마법사, 관계성을 상징하는 연인은 성숙한 남성성의 상징이다. 저자는 소년 에너지를 키워 이런 긍정적인 성향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을 안내한다. 내면의 어린아이와 싸우면서 성인으로서의 잠재력을 꽃피워야 한다는 얘기다. 훌륭한 왕은 경험이 풍부하고 이타적이며 현명하다. 아기 폭군에 계속 머물면 무책임함과 끝없는 요구사항 때문에 자신에게도 해를 끼친다.

페미니스트들이 공격하는 남성성의 과잉은 진정한 남성성이 아니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다른 이들을 지배하고 무력하게 만들지 않는 침착하고 안정된 남성성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남자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배울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하는 책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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