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의 명퇴금이 시중은행에 비해 크게 쪼그라든 것은 2014년 감사원이 금융 공공기관의 명퇴금(잔여보수 85~95%)이 과도하다고 지적하면서다. 공공기관 인건비 제도를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는 감사원 지적을 받고 이듬해부터 국책은행의 명퇴금을 다른 금융공기업과 같은 수준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4일 금융당국이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책은행 세 곳(산업·기업·수출입은행)의 인원은 2016년 1만2521명에서 지난 3월 1만3765명으로 늘었다. 5년 새 1000명 넘게 증가했다. 이 기간 은행별 신규 채용 규모는 매년 줄거나 비슷하게 유지돼 왔다.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인력이 ‘퇴로’를 찾지 못하면서 조직 규모가 비대해졌다는 게 업계 얘기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명예퇴직을 하더라도 퇴직금 상한 기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대부분 정년까지 다니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한다”며 “당장 할 일이 없더라도 남아서 자녀 대학 등록금 등 복지 혜택이라도 받는 게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은행별로는 기업은행에서 임직원 수가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6년 8366명에서 지난 3월 9509명까지 늘었다. 지점장급 비중도 급격하게 증가했다. 올해 기준 전국 지점 631곳에 근무하는 지점장급 직원은 1000여명에 달한다. 451곳(71.4%)에 임금피크제가 적용된 지점장급 직원이 일하고 있다. 다른 은행도 사정은 비슷하다. 산업은행은 1990~1992년 입사한 팀장급 직원만 600여 명으로, 전체 직원의 18.4%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은퇴를 앞둔 직원들의 무력감과 세대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직을 관리하던 중견급 인력이 하루아침에 후선 업무를 지원하게 되고, 이렇다 할 자리가 없어 6개월가량 교육 연수에만 강제 투입하는 곳도 있다. 금융권 시니어 노조 연합체인 ‘50+금융노동조합연대회의’의 노정호 사무총장은 “조직에 남은 국책은행 임금피크제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됐다고 토로하면서도 정년을 억지로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명퇴 제도를 유지하는 한 조직은 더 빠르게 노쇠하고 청년 신규채용의 문은 점점 좁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점포 슬림화와 디지털 전환이 금융권의 생존 과제가 된 시대에 국책은행만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는 사이 국책은행 노조가 줄소송에 나서면서 법적 리스크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산업은행 노조는 “부당하게 설계된 임금피크제는 무효”라고 주장하며 2019년 단체 임금 청구 소송에 나섰으나 지난 4월 1심에서 패소했다. 기업은행 시니어 노조 조합원들도 지난해 “본인 동의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며 미지급 임금 청구소송을 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퇴 전후 직원들은 직급이 급격하게 강등되는 등의 조치로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회사에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시중은행 수준의 많은 명퇴금을 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소람/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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