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다. 인터넷 검색, 쇼핑, 금융, 헬스케어, 가전, 게임 등 AI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이런 ‘AI 대세론’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AI가 획기적인 사용자 경험 개선과 기업 실적 향상으로 이어지게 하는지 불투명하다는 주장이다.
국내 게임업계 1위 넥슨에서 AI 연구개발을 주도하는 배준영 인텔리전스랩스 부본부장은 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AI 효과는 분명히 실재한다”고 단언했다. AI를 적용한 게임 이용시간이 눈에 띄게 늘고, 개인정보 도용 범죄가 90% 이상 감소하는 등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런 넥슨도 10여 년 전부터는 업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넥슨이 주목한 것은 AI였다. 배 부본부장은 “재미있는 신작 게임을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게임 이용자의 즐거움을 극대화하고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는 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며 “AI가 그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2010년 업계 최초로 AI·데이터 분석 부서를 꾸린 게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분석 부서는 2017년 별도 조직(인텔리전스랩스)으로 승격됐다. 인텔리전스랩스 인원은 500명에 이른다. 웬만한 중소기업 직원보다 많다.
10년이 넘는 연구개발 결과 넥슨은 AI를 게임 이용자가 접하는 거의 모든 서비스에 스며들게 하는 데 성공했다. 배 부본부장은 “게임 이용자의 광범위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맞춤형 추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게임 아이템, 튜토리얼은 물론 이용자 모임인 길드와 참고할 만한 동영상 콘텐츠까지 추천한다”고 소개했다.
던전앤파이터, 카트라이더 같은 온라인 게임은 성향과 실력이 비슷한 이용자끼리 만드는 ‘길드’가 게임을 즐기는 데 중요한 요소다. 넥슨은 게임 이용자의 성향을 AI로 분석해 개인별로 적합한 길드를 추천해준다. 게임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게 돕는 유튜브 영상 등을 추천하는 데도 AI가 쓰인다. AI가 사용자의 게임 적응과 ‘능력치’ 향상에 도우미 역할을 하는 셈이다. 넥슨 관계자는 “작년 게임회사로는 처음 연매출 3조원을 달성한 것도 AI의 기여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의 공통된 고민 중 하나는 개인정보 도용 범죄다. 게임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도용해 아이템을 결제하는 범죄다. 이런 범죄가 늘어나면 회사의 신뢰도가 깎이고 이용자 이탈을 불러올 수 있다. 넥슨은 작년 9월 AI로 도용 범죄 방지 시스템을 구축했다. AI에 개인정보 도용 결제 사례를 집중 학습시킨 뒤 비정상적 결제 방식을 자동으로 감지해 차단하게 했다. 결과는 극적이었다. 도용 피해 건수와 금액이 90% 이상 줄었다.
배 부본부장은 “그동안 AI가 비정상 결제를 감지하면 직원이 이용자에게 전화를 걸어 결제한 게 맞는지 확인했다”며 “5월부터는 결제 확인 업무도 AI가 수행한다”고 말했다. 도용 방지 시스템 전반이 AI로 자동화된 것이다. 그는 “이용자와 친구처럼 대화하면서 어떤 질문과 요구에도 만족스러운 답을 하는 수준으로 AI를 고도화하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서민준 기자/사진=김영우 기자 morandol@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