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구에선 섬유업체 두 곳이 연달아 부도를 맞았다. 인근 한 섬유업체 사장은 “이 지역 섬유업계의 80%가 수출기업인데 요즘 폐업이 늘고 있다”며 “원자재 가격, 해운 운임 급등에 최저임금 부담, 주 52시간제까지 겹쳐 중국 베트남 등에 비해 차별화된 경쟁력도 모두 사라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주영섭 고려대 특임교수(전 중소기업청장)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 등으로 중소기업들이 이제 사람 뽑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제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 제조업체들이 동시다발적 악재로 ‘넛크래커(nut-cracker)’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몇 달 새 20~30% 이상 치솟은 데다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누적된 친(親)노동 규제에 끼여 탈출구를 찾지 못해서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 일부 업종이 회복세를 보이지만 대·중소기업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며 “구조적 격차를 해소하지 않으면 한국 제조업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김포의 한 기계설비업체는 철제 코일을 확보하지 못해 지난달 목표 생산량을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올 4월 중국 정부가 자국 내 철강제품의 수출증치세(부가가치세·13%) 환급 제도를 폐지하면서 중국산 원자재를 전혀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2월 ㎏당 900원 하던 국내 업체의 철판 가격이 5월 들어선 1600원까지 치솟았다”며 “금속을 원자재로 쓰는 모든 업체가 비슷한 처지”라고 말했다.
경남에서 기계 부품을 생산하는 D사는 원자재를 수입할 때 필요한 선박을 구하지 못해 항공물류까지 이용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납기를 맞춰야 해 어쩔 수 없이 운임을 몇 배 더 주고 비행기로 자재를 날랐다”고 토로했다.
중소 제조업의 위기 상황은 지표로도 드러난다. 5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대기업이 110인 반면 중소기업은 80에 그치며 대·중소기업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 주요 국가산업단지 가동률도 대기업 협력사가 밀집한 울산 산단은 3월 기준 89.7%에 이르는 데 비해 남동(70.8%) 시화(73.1%) 산단 등은 활기가 떨어졌다.
4월 기준 중소 제조업 취업자 수도 351만1000명에 그쳐 지난해 3월 이후 14개월 연속 감소했다. 노 단장은 “숙련공이 많아 고용안전판 역할을 해온 중소 제조업에서 인력이 줄었다는 건 심상치 않은 조짐”이라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두고 한국 제조업의 회복 탄력성이 낮아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제조업 창업자도 줄고 있다. 1분기 제조업 창업은 1만2736개로 전년 대비 1.8% 감소했다. 기계·금속(8.6% 감소) 기타 제조업(6.6% 감소) 등 뿌리산업 위주로 감소폭이 컸다.
오는 7월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주 52시간제가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국내 제조기업의 98%는 50인 미만 사업장으로 전체 제조기업 종사자의 약 51%가 근무하고 있다. 주보원 한국금속열처리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력 30%를 더 고용해야 하지만 일할 사람을 구하기도 어려워 생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중소기업의 은행대출 잔액이 늘어난 상황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도 악재로 꼽힌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건 한계상황에 봉착하는 기업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산업의 근간인 제조업이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대출만기 연장 등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안대규/민경진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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