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10대 천재 골퍼 유카 사소(19)는 타이거 우즈(46·미국)보다 로리 매킬로이(32·북아일랜드)를 더 좋아했다. 어깨를 돌려 있는 힘껏 고무줄처럼 몸을 꼬았다가 풀어버린 뒤 피니시 동작 때 정지하는 스윙 리듬까지 매킬로이와 비슷하다. 270야드 안팎의 장타에 높은 탄도까지 장착해 ‘여자 매킬로이’로 거듭났다.
지난해 12월 US여자오픈에서 미국 언론이 사소의 스윙을 매킬로이와 나란히 놓고 분석하기도 했다. 당시 사소는 “매킬로이의 스윙을 열두 살 때부터 좋아했다”며 “그의 스윙 영상을 보고 잠든다”고 말했다.
매킬로이를 동경해온 사소가 첫 우승 트로피를 메이저대회에서 들어올렸다. 사소는 7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올림픽 클럽 레이크코스(파71)에서 열린 제76회 US여자오픈(총상금 550만달러) 최종 라운드에서 최종합계 4언더파 280타를 기록한 뒤 연장 승부 끝에 ‘일본의 간판’ 하타오카 나사(22)를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경기 뒤 SNS를 통해 매킬로이와 축하 인사를 주고받은 사소는 “로리에게 고맙다”며 “로리처럼 나도 이제 US오픈 트로피를 갖게 됐다”며 웃었다. 매킬로이도 메이저 첫 우승을 2011년 US오픈에서 차지했다.
일본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에서 뛰어온 사소는 초청선수 자격 등으로 LPGA투어에 종종 참가해왔다. 이번 우승으로 향후 5년간 LPGA투어 카드를 확보했다. 경기 뒤 LPGA투어 회원 자격을 받아들였고, 우승상금 100만달러(약 11억1000만원)도 공식 기록으로 인정됐다. 이 덕분에 사소는 뉴질랜드 동포 리디아 고(89만451달러)를 따돌리고 단숨에 상금 1위로 도약했다.
이날 경기 초반만 해도 사소는 우승 후보가 아니었다. 선두를 달리던 렉시 톰프슨(26·미국)에 1타 뒤진 2위로 출발했으나 2번홀(파4)과 3번홀(파3)에서 연속 더블 보기를 범해 우승 경쟁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톰프슨이 11번홀(파4) 더블 보기를 포함해 후반에만 5타를 잃은 틈에 사소는 17번홀(파5)까지 버디 3개(보기 1개)로 타수를 만회했고, 이날만 3타를 줄이며 쫓아온 하타오카와 연장전에 들어갔다.
사소는 9번홀(파4)과 18번홀(파4) 결과를 합산해 승자를 정하는 연장 1차전에서 비긴 뒤 9번홀에서 서든 데스로 열린 2차 연장에 들어갔다. 두 번째 샷을 홀 약 3m 지점에 보낸 뒤 이를 버디로 연결해 파에 그친 하타오카를 따돌렸다. 사소는 “초반에 더블 보기가 2개나 나오면서 속상했는데 캐디가 ‘남은 홀이 아직 많다’며 용기를 줬다”며 “위대한 선수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트로피에 내 이름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타에다 언제나 홀을 지나가는 퍼팅을 하는 등 배짱까지 겸비한 사소의 등장으로 다음달 도쿄올림픽 여자골프의 승부는 더욱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사소에 앞서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인스퍼레이션을 제패한 태국의 패티 타와타나낏(22)까지 유력한 우승 후보로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잡은 우승을 내준 톰프슨은 결국 3언더파 3위로 대회를 마쳤다. 한국 선수 중에선 세계랭킹 1위 고진영(26)과 2위 박인비가 최종합계 1오버파 공동 7위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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