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 재정’, 즉 ‘나라살림을 중장기 관점에서 잘 꾸려가기’는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실이 일관되게 주장 촉구해온 큰 방향의 중요 아젠다다. 논설실 뿐 아니라 한경이 기사를 쓰고, 지면을 꾸려나가는 과정의 핵심 의제다. 몇 년째, 정부와 지금은 과반을 훌쩍 넘게 슈퍼 여당이 장악한 국회가 확장 재정 일변도로 몰고 가는 것과 비교가 된다. 재정지출에 중독된 듯한 정부의 돈풀기 정책은 확장 재정이 아니라 과도한 팽창 재정이다. 일각에선 재정지출에 과도하게 기댄다는 의미에서 재정중독이라고도 한다.
신문이, 언론이 행정부가 됐던 입법부가 됐던 ‘정부’와 일관되게 매사 대립하면서 가는 게 만만하다거나 편한 일은 못 된다. 언론이 정부 혹은 권력을 감시하고 와치 독 역할을 하는 것은 본연의 기능이기는 하다. 그래도 재정의 역할이나 나라살림의 운용 방향을 두고 대립되는 목소리가 나오고 팽팽한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권력과 대립각을 세우려면 좀 더 긴장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런 맥락과 흐름에서 한경은 건전재정과 효율적 나라 살림을 촉구하는 사설을 확실히 더 많이, 더 자주 썼다.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여러 가지 관련 팩트에 포커스를 맞췄으며, 온갖 오류와 부작용을 다각도로 지적했지만, 큰 줄기는 간단하고 명확하다.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지금 어렵다고 미래세대에 무작정 큰 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지출을 늘려야 할 때도 효과를 검증해야 한다, 즉 제대로 잘 써야 한다. 현금 살포 같은 포퓰리즘에 중독되면 큰 일 난다’. 이런 식의 경고, 외침이었다.
며칠 전(5월28일자)에도 이렇게 시작하는 사설이 나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또 ‘재정확장론’을 폈다. 문 대통령은 어제 ‘2021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적어도 내년까지는 확장재정 기조 유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논란과 우려 속에 4년간 견지해온 ‘슈퍼 팽창예산’을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마지막 편성으로, 지금쯤 기획재정부 예산실이 정신없이 바쁠 2022년 예산짜기도 그런 기조로 밀어붙이겠다는 뜻이다....’ 국가재정전략회의라는 법에 정해진 매우 중요한 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린 날이었다. 정부는 한경의 이런 지적에 불편했을지 모르겠다. 불편이나 거부감, 기분 나쁨 이런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한경의 주장에 과연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는지 이긴 하지만….
그렇지 않다. 팔아먹을 국유재산도 없고 쌓아둔 국부펀드도 없는 나라, 재정이라는 게 오로지 세금에만 기대는 대한민국에서 재정이 취약해지면 어떻게 되나. 이게 국내의 우리끼리 문제로 끝날 것이냐는 게 우리의 기본 걱정이다. 경제가 어려우면 세금징수도 난관이라는 건 말 할 것도 없고, 재정위기 국가들이 동물원의 관람용 짐승까지 잡아먹는 ‘마두로 다이어트’를 경계하는 것이다. 지금 투표권도 발언권도 없다고 미래세대에 빚만 잔뜩 ‘위대한 유산’으로 남겨주는 게 기성세대가 할 일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흉년에 굶주려도 씨앗 곡식은 쉽게 손대지 않았다는 동서고금의 사례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경기의 마중물도 좋고, 정부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예산을 동원하다보니 지출이 늘어난다는 논리, 주장이라면 그것대로 좋다. 설령 그렇게 지출을 확대할 경우에라도 지출이 늘어나는 부문의 효율성을 점검하는 등으로 꼭 필요한 곳에, 제대로 쓰고 있느냐고 한경은 주장해 왔다.
복지 문제도 마찬가지다. 급팽창하는 복지에 대한 어느 토론장에서 기자가 겪은 일이다. “무분별한 복지, 생산적 복지여야 한다. 재원 문제에 대한 논의 준비 없이 과도한 복지가 지속가능하겠느냐”는 문제제기에 어떤 편향된 복지론자는 이렇게 기자를 추궁했다. “그래서? 한경은, 허 논설위원은 복지 하지 말자는 것이냐?”. 세상에 이런 비약과 선동이 어디 있나. 한경도, 나도 복지를 하지 말자고 한 적도, 그렇게 주장할 리도 없다. 제대로 된 복지, 꼭 필요한 취약 계층이 제대로 수혜 받는 복지, 한두 해 시행하고 돈이 없어서 끝나버리는 복지가 아닌 진짜 복지를 하자는 말인데….
독자들의 냉철한 평가를 바란다. 확장재정론이 계속 돼야 하는가, 건전재정론의 궁극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언제까지 코로나 핑계나 댈 것인가. 내임기 중에 아니면 그만인가. 확장 혹은 허리띠죄기처럼 방향성만이 아니다. 어차피 재정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 허용될만한 재정 적자폭은 GDP대비 어느 정도 선인지, 그렇게 해서 누적된 국가 채무와 공공부채는 어느 정도가 한계인지, 재정지출에 대한 효용성 검사 방식은 어떤 식이 가장 좋을지, 이런 것이라도 다양한 의견과 분석이 나오면 좋을 것이다. 그런 게 국가적 사회적 공론화 거리 아닌가. 진짜 논쟁은 이제부터라고 해도 좋겠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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