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8일(현지시간)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기술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따돌리기 위해 5년간 2500억달러(약 280조원)를 지원하는 ‘미국 혁신·경쟁법’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백악관은 이날 반도체, 전기자동차 배터리, 희토류, 제약 등 4개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 축소와 미국 내 생산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공급망 재편 계획을 발표했다. 미 의회와 행정부가 나란히 중국 견제를 본격화한 것이다.
이 법은 그동안 상원에 계류된 각종 중국 견제 법안을 망라했다. 향후 5년간 기술 개발에 1900억달러, 반도체 연구·설계·제조에 520억달러를 지원하는 게 핵심이다. 반도체 지원액 520억달러 중 20억달러는 현재 공급난이 심한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 배정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법안을 지지하고 있다. 국립과학재단과 미국반도체협회에 따르면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비중은 1964년 2.2%로 정점을 찍은 뒤 하락세로 돌아서 지난해 0.7%까지 떨어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R&D 비중을 약 2%까지 끌어올리고 미국 내 반도체 생산도 확대하겠다고 공언해왔다. 법안은 하원을 통과한 뒤 대통령 서명을 거치면 정식 발효된다.
보고서의 핵심은 반도체, 배터리, 제약, 희토류 등 ‘국가안보’와 밀접한 분야에서 중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 내 생산을 늘리거나 동맹 및 파트너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과의 협력도 확대될 전망이다. 보고서엔 중국을 뜻하는 ‘China’ 및 ‘Chinese’라는 단어가 566번이나 언급됐고, 반도체와 차 배터리에 강점을 지닌 한국을 언급한 횟수는 70번이 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주요 동맹의 핵심 정부 당국자와 민간 분야가 참여하는 공급망 강화 국제회의를 소집하기로 했다. 반도체, 배터리 등의 분야에서 한국 기업도 초청될 것으로 예상된다.
분야별로 보면 △500억달러 규모의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지원 법안 마련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지원 △리튬 등 배터리 원료물질 확보를 위한 국내외 광물 투자 및 미국 내 희토류 생산 확대 △미국에서 50~60가지 핵심 의약품과 원료물질 생산 확대 방안 등이 포함됐다.
특히 상무부는 희토류인 네오디뮴 자석 수입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조사할지 검토하기로 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물품의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조항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일방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때 사용했다.
백악관은 또 정부 보조금 등 불공정 무역관행에 대응하기 위해 미 무역대표부(USTR)가 주도하는 ‘무역 기동타격대’를 신설하기로 했다. 불공정 행위에 연루된 국가와 기업에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것으로 중국이 핵심 타깃이 될 전망이다. 백악관이 공급망 재편을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즐겨 썼던 ‘관세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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