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지난 9일 발생한 광주광역시 철거 건물 붕괴 참사에 대해 “총체적 인재(人災)”라고 입을 모았다. 철거업체의 부실 철거에 더해 이를 관리·감독할 감리업체는 건설 현장에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
공사 인허가권을 쥔 광주시도 철거업체가 낸 계획서대로 공사가 이뤄지는지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은 대규모 공사장 주변에 마땅한 안전 설비나 임시 버스 정류소 등을 설치하지 않아 “안전관리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구청 측은 철거업체가 계획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철거업체가 건물 4~5층을 그대로 둔 채 3층 구조물을 부수는 모습을 봤다는 주민 진술도 나왔다.
“사고 발생 하루 전 건물 뒤편에 붙어 있는 2층짜리 별도 구조물을 철거해 건물 하부 구조가 약해졌고, 굴삭기의 미는 힘이 가해져 건물이 더 쉽게 쓰러졌다”는 추정도 나온다.
“부실한 안전장치 탓에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공사장 주변에는 왕복 6차로와 버스 정류장이 있지만 분진 가림막만 설치됐다. 건축물 무게를 지탱할 철골 기둥이나 인도를 보호할 철제 터널 등은 없었다.
공사장 옆에 있는 버스 정류장도 옮기지 않아 무너진 건물에 시내버스가 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장 안전을 책임져야 할 현대산업개발은 광주시에 임시 버스 정류장 설치 등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가 시작되면 도로나 인도에 안전장치를 설치하고, 정류장을 옮겨달라고 시에 건의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건물을 철거할 때 철거업체와 이를 감독할 감리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하지만 사고 당시 감리자는 건설현장에 없었다. 감리업체가 시행사인 재개발조합과 ‘비(非)상주’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잠원동 사고를 계기로 안전점검 기관의 지정 권한을 건축주에서 지방자치단체로 넘기도록 건축물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아울러 건물을 해체할 때 감리를 받게 했다.
그러나 감리업체 지정 권한만 지자체에 넘어오고, 감리 업무를 제대로 하는지 감독은 여전히 ‘깜깜이’로 이뤄진다는 지적이다. 광주 동구도 감리자가 현장에 상주하지 않을 것이란 철거계획서를 받고도 별도 감독을 하지 않았다.
광주경찰청은 수사본부를 꾸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이날 현대산업개발 광주 현장사무소와 철거업체, 감리회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안전수칙 준수 및 업무상 과실 여부와 철거공사 인허가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을 수사할 방침이다. 현재까지 경찰은 참고인 13명을 소환 조사하고 철거업체 관계자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전 허가 과정이 적법했는지, 건물 해체 공사 주변의 안전 조치는 제대로 취해졌는지, 작업 중에 안전관리 규정과 절차가 준수됐는지 확인하라”며 철저한 사고 원인 조사와 책임 소재 규명을 지시했다.
양길성/강영연/최한종/광주=임동률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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