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와 쓱닷컴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요즘 화두는 ‘속도’다. 네이버와 손잡고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롯데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쓱닷컴 상장 일정도 내년으로 앞당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유통산업을 대표하는 롯데와 신세계의 인수합병(M&A) 본능이 깨어나고 있다. 부동산 자산을 본격 유동화해 수조원을 조달하는 등 ‘화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거대 ‘유통 테크’ 기업들과의 진정한 ‘쩐(錢)의 전쟁’이 시작되고 있는 셈이다.
올 3월 쿠팡의 뉴욕증시 상장은 e커머스에 대한 유통 강자들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놨다. 네이버가 검색에 이어 쇼핑에 ‘올인’하면서 거래액을 28조원(작년 말 기준)으로 끌어올린 것도 롯데, 신세계의 야성을 깨우는 자극제가 됐다.
롯데 신세계가 매물로 나온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총력전을 기울이는 이유다. 롯데쇼핑은 인수팀이 최근 미국 이베이 본사를 찾아가 고용 승계 계획 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본입찰에 써낸 가격에서 신세계와 격차가 거의 없는 만큼 정성 평가에 중점을 둔다는 전략이다.
이마트는 알짜 매장을 담보로 조 단위 대출을 받을 정도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이베이코리아 인수 후엔 네이버, G마켓, 옥션,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쓱닷컴을 모두 아우르는 통합 멤버십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고 말했다.
롯데쇼핑 역시 2012년 하이마트 인수 이후 다른 기업 인수를 통한 외형 확장에 소극적이었다. e커머스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이 2~3년 전 티몬 인수를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매각 측이 갑자기 가격을 올리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전했다.
롯데, 신세계 경영진이 ‘유통업은 부동산이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공격적인 투자를 적극 모색하는 것도 큰 변화다. 신 회장은 2008년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고 선언했지만 롯데쇼핑이 자산 유동화에 본격 나선 건 2019년 롯데리츠를 설립하면서부터다. 대형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최근 글로벌 큰손들은 기업들이 부동산 등 자산이 아니라 본원적인 경쟁력으로 승부하길 원한다”며 “삼성, SK그룹 등이 일찌감치 본사 건물을 매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이베이코리아 인수전 이후가 ‘진짜 본게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매각 측이 제시한 가격과 인수 후보들이 써낸 가격이 1조원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최종 매각이 어려울 수도 있다”며 “롯데와 신세계가 수조원의 실탄을 확보한 만큼 이베이코리아 외에 다른 M&A로 눈을 돌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해 11번가를 보유한 SK텔레콤과의 제휴 가능성이 거론된다. 패션 등 특정 분야에 특화된 전문몰을 겨냥한 M&A가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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