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의 숫자가 편의점보다 많은 일본에서 승려의 절반이 생계를 위해 샐러리맨을 겸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의 진전으로 시장의 규모가 커지던 일본 불교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8만여 곳에 달하는 사찰 수가 40% 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우카이 히데노리 바람직한사찰연구회(良いお寺?究?) 대표 겸 쇼카쿠지(正覺寺) 주지스님은 11일 일본외신기자센터(FPCJ)가 '코로나19와 변하는 일본의 사찰'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온라인 강연회에서 이 같이 내다봤다.
에도시대 단가제도(壇家制度·특정한 절에 가문의 묘지를 갖고 있으면서 그 절의 재정을 돕는 제도)의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와 묘지관리와 장례식, 제사 등을 주수익원으로 삼고 있다. 일부 사찰은 빌딩·주차장 경영, 판매업, 음식점, 숙박업 등 수익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반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로 사찰의 수입이 줄어들면서 부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승려도 늘고 있다. 우카이 대표는 샐러리맨을 겸업하는 승려가 50%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경제신문 기자 출신인 우카이 대표 자신도 도쿄농업대학과 불교대학에서 강사를 겸업하고 있다.
바람직한사찰연구회는 일본 불교계 처음으로 일본 사찰의 연간 수입과 시장규모를 조사해 공개했다. 대형 교단인 정토종(淨土宗) 소속 사찰 1곳의 연평균 수입은 800만엔(약 8134만원)으로 나타났다. 조동종(曹洞宗)과 정토진종본원사파(淨土眞宗本願寺派) 소속 사찰은 연간 700만엔과 720만엔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불교계는 고령화 시대에 드물게 성장하는 분야였다. 장례 관련 절차가 주수입원인데 고령화의 진전으로 일본이 사망자가 많은 다사(多死)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2007년 사망자수가 출생아수를 처음 넘어선 이래 사망자 우위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2005년 108만명이었던 사망자수가 2015년 130만명으로 늘었다. 2030년에는 160만명까지 늘어난 뒤 비슷한 추세가 수십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모든 전망이 한 순간에 변했다. 2005년 4000억엔(약 4조672억원)이었던 불교계 시장규모는 지난해 5700억엔으로 늘어날 전망이었다. 2025년에는 6500억엔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됐다.
코로나19 여파로 사찰 수입이 급감하면서 지난해 시장규모는 2700억엔으로 위축됐을 것으로 추산된다. 당초 예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작년 3~6월 '수입이 줄었다'는 사찰이 84%에 달했다. '변함 없었다'는 14%, '늘었다'는 1%에 그쳤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위생과 안전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일본에서는 질병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년보다 9838명 줄었다. 이 때문에 우카이 대표는 사찰 상당수가 지난해 적자를 냈을 것으로 진단했다.
시장규모가 줄어듦에 따라 사찰 수의 감소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7만7000여곳의 일본 사찰 가운데 주지스님이 있는 절은 6만여곳으로 나머지 1만5000~1만7000곳은 비어있는 절로 추산된다.
'절을 물려받을 후계자가 있다'는 주지스님의 응답이 2005년 63%에서 2019년 52%로 줄었다. 이 때문에 우카이 대표는 "2040년이면 정주하는 승려가 있는 사찰이 5만곳 이하로 줄면서 절의 숫자도 40% 이상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고야산진언종 등 산중에 사찰이 있는 종파를 중심으로 숫자가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승려 한 명이 복수의 절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 번에 여러 곳의 사찰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우카이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1일장 증가, 사찰의 디지털화, 시주의 전자결제화 등 불교계의 재편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또 재정적으로 건실한 절과 취약한 절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부업을 하는 승려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의 전통 신앙인 신도의 사정은 더욱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신사는 8만1000여곳으로 사찰보다 많다. 하지만 비어있는 신사는 3만4000여곳으로 빈 절의 2배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일본의 신사 역시 2040년이면 5만곳 이하로 지금보다 4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우카이 대표는 "신사는 절과 달리 일종의 '회원제 고객'이 없다"며 "고정수입이 없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더 곤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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