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씨(연봉 9400만원)는 지난해 12월 은행에서 1억2000만원 규모의 신용대출을 받았다. 대부분 펜션을 운영하는 부모님께 연말 자금용으로 빌려드린 뒤 나머지 일부는 ‘코스피 랠리’에 동참하고자 주식에 털어넣었다.
문제는 반년이 지나서야 터졌다. 올초 전세 계약이 끝난 김씨는 돌려받은 보증금과 기존 저축을 합쳐 서울에 작은 아파트를 장만했다. 추가 대출은 받지 않았다. 그런데 김씨는 신용대출을 받은 은행에서 이달 초 갑자기 “1년 내 집을 사지 않겠다는 약정을 위반했으니 대출을 상환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해당 신용대출을 주택 구입용으로 사용하지만 않으면 되는 것으로 이해한 김씨는 사정을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부랴부랴 보유 주식을 매각하고 부모님에게 돌려받은 일부 자금에다 비상금까지 끌어모아 간신히 갚을 수 있었다.
소득이나 대출 용도에 상관없이 차주가 대출을 받고 나서 1년 안에 집을 산 사실이 확인되면 은행은 무조건 대출을 거둬들여야 한다. 규제 시행일 이후 신규 신용대출이 있고, 신용대출 총액이 1억원을 초과하는 사람이 대상이다.
차주가 상환 능력이 충분하고 주택자금 용도로 대출받은 게 아니더라도 대출을 일시 상환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일한 예외는 상속으로 주택을 취득했을 때뿐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규제 시행일 이후 추가 약정서를 쓰고 신용대출을 받았다면 상속 이외 사유로 집을 취득한 사람은 전부 위반에 해당한다”며 “차주는 기한의 이익 상실을 통보받으면 14일 이내에 전액 상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박씨와 비슷한 사례가 워낙 많아 가족 명의로 대출금을 융통하고 집을 산 다음 추가로 신용대출을 받아 되갚으라거나 집주인과 협의해 소유권 등기부터 이전받은 뒤 잔금을 치르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쓰라는 식의 ‘꼼수’도 오가고 있다. 박씨는 “집값이 너무 올라 원치 않아도 대출을 다 끌어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개인 신용으로 빌리는 대출까지 경직적으로 규제하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규제 도입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무주택자가 1주택자가 되는 사례는 예외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 은행 관계자는 “오는 7월부터 상환능력 중심의 차주 단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새로 시행되는 만큼 단순 대출금액을 기준으로 하는 규제는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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