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74년 이후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인구가 줄어든 청송군에서도 2013년 10명, 이듬해엔 25명 인구가 증가한 때가 있었다. 윤경희 청송군수는 재임하기 전의 일인데도 기회만 되면 “인구가 늘어난 적도 있다”고 자랑했다. 인근 포항 같은 큰 도시에서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인구 감소세가 주춤했던 게 그만큼 위안이 된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일시적 증가란 이유가 아쉬울 따름이다.
젊은 층의 대도시 유출과 저출산·고령화 가속, 가임(可姙)여성 감소 등으로 지역의 존립 기반 자체가 허물어지는 이른바 ‘지방소멸’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추세가 바뀌지 않고 감속 기미도 안 보인다. 2014년 일본에서 ‘마스다 보고서’가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지방소멸이 2016년부터 한국에서도 이슈화돼 중앙과 지방정부가 안간힘을 쓰며 인구 감소를 막아보려 하지만 성과는 신통찮다. ‘지방소멸 위험지수’(한국고용정보원 조사, 20~39세 여성인구/65세 이상 인구)가 0.5 미만인 소멸위험지역이 2014년 첫 조사 때 전국 228개 시·군·구 중 77곳(33.8%)에서 작년엔 105곳(46%)으로 늘어났다. 인구 2만5000명을 최후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는 청송군 역시 소멸위험 시·군·구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지역이 얼마나 고사 직전이면 혐오시설인 교도소를 유치하려는가 싶었다. 청송군의 작년 소멸위험지수가 0.155로 나타났으니, 노인 인구(65세 이상)에 비해 가임여성 인구가 약 16%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 비율이 100%는 돼야 기존 인구가 유지될 수 있는데, 16%밖에 안 돼 지역 공동화(空洞化)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윤 군수는 “교도소도 지방자치단체엔 하나의 산업”이라며 역발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여성 재소자 700명을 수용한다고 가정하면 여성 교도관 250~300명이 필요하고, 가족까지 1000명의 상주인구를 늘릴 수 있다”며 “여성 재소자 1인당 연간 면회객이 10명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교정시설이 밀집된 청송군 진보면 일대의 서비스업이 크게 활성화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입지 면에서도 임하댐 인근인 청송군은 ‘굴뚝 없는 교도소’가 웬만한 기업 유치보다 낫다는 것이다.
청송군도 고민이 없진 않았다. 청정지역이란 BI(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담은 ‘산소카페 청송’, 전국 최대 사과 주산지, 국립공원 주왕산 등 천혜의 관광자원을 활용하는 지역발전 전략에 과연 교도소 추가 유치가 도움이 될지 확신이 안 섰다. 그러나 작년 말 코로나19에 집단감염된 서울 동부구치소 재소자들을 청송교도소 내 유휴시설에 수용한 뒤 치료하는 과정에서 힌트를 얻었다. ‘청정’과 ‘힐링’의 고장에서 질병 ‘치유와 치료’, 나아가 재소자의 사회 복귀를 돕는 ‘교정’까지 하나의 이미지로 묶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지역 특색이 비슷한 강원 태백과 전북 남원이 여자교도소 유치 경쟁에 뛰어든 배경이기도 하다.
그나마 이뤄진 중앙정부의 지역회생 지원도 청년을 지방으로 유인하는 성과엔 이르진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소멸위험도가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경북 의성군의 ‘이웃사촌 시범마을사업’은 2019년 457억원, 작년 249억원에 이어 올해는 356억원이 국비 등에서 지원된다. 하지만 ‘OO사업’ 식으로 이름을 그럴듯하게 붙이고 돈만 지원하는 식으론 목표로 하는 성과관리 자체가 힘들다. 그런 혜택을 받지 못한 인근 지자체는 상대적으로 더 위축되는 풍선효과를 걱정하기도 한다.
지방소멸 위기감이 비단 농·산촌뿐 아니라 도시지역, 비수도권 대도시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거리다. 작년 한국고용정보원 조사에서도 도시지역인 시(市) 22개, 자치구 6개가 소멸위험지역에 포함됐다. ‘한국판 러스트벨트’ 위기감에 휩싸였다가 ‘수소 시티’에서 활로를 찾고 있는 창원시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이기헌 한국공공자치연구원 원장은 “4차 산업혁명은 국가경쟁력뿐 아니라 지역회생 차원에서도 중요하다”며 “소도시는 어렵더라도 중소 및 대도시는 자신만의 독특한 신산업을 적어도 하나는 붙잡고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0~20년 뒤 도시 운명을 뒤바꿀 경쟁의 판이 펼쳐졌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면 복구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역회생이란 쉽지 않은 과제 앞에 4차 산업혁명을 기회 요인으로 삼을지는 오로지 지방정부의 역량에 맡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지만 발상을 전환해 앞날을 준비하는 청송군의 노력이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귀농 아닌 귀촌에 정부 지원 중점을"
이 전 장관은 “총 46만 명에 달하는 귀농·귀촌자 중 귀농자는 1만5000명에 그치고, 나머지는 모두 귀촌자”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도 정부는 지역회생 정책을 귀농자에게 맞추고, 어떻게 하면 농사를 더 짓게 하느냐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전 장관은 “수도권에 남아 있는 400만 명의 베이비부머가 고향으로 돌아가 다양한 비(非)농업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대표적 유휴자원인 산지와 삼림을 활용해 산지생태축산 등 다양한 소득원으로 삼게 한다면 국토를 고루 쓰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공유지라도 임대해서 그런 소득원을 늘려주라는 조언이다.
지역회생 정책도 뭔가 대단한 걸 내놓으려고 하기보다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을 인구소멸지역, 낙후지역, 지방중소도시에선 감면해주고 다주택자 중과세 적용을 배제해주는 식으로 범정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에 겨우 아파트 한 채 사놨는데, 이걸 팔고 귀촌하려니 양도세 부담 때문에 못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은 “정부가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개정해 인구소멸지역에 돈을 더 주겠다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일하는 방식 때문에 돈을 아무리 써도 효율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투입 대비 산출 효과가 크지 않다”고도 했다. 지방과 농촌으로 사람과 돈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지원 제도·대상·수단·체계 등을 종합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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