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는 “직접 입주를 원하는 매수자들이 세입자가 집을 비워줄 수 있는지 여부를 따져 매매계약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두 달가량 지난 후 세입자가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이 이후부터 2년간은 집이 팔리지 않을까봐 서둘러 매도하고 싶은데 집이 나가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31일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가 도입된 후 집주인들이 전세 만료 시기를 여섯 달 이상 앞두고 매수자 구하기 전쟁을 벌이고 있다.
15일 구로구 인근 C공인 관계자는 “세 낀 매물을 매도하려는 사례 중 전세 만료 기간이 6개월을 초과해 남은 경우엔 새 집주인이 매수 후 세입자에 퇴거 명령을 할 수 있다”며 “최근엔 갭투자자들이 거의 없고 직접 입주를 하겠다는 매수자들이 많아 전세 만료 기간이 6개월 이하로 짧게 남은 매물은 거의 거래가 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집주인은 세입자가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 이내에 계약 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 집주인이나 가족이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는 갱신을 거절할 수 있지만, 전세계약 만료 최소 6개월 전에 소유권 이전 등기까지 마쳐야 한다. 따라서 실거주 목적의 새 집주인이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전에 소유권 이전등기까지 마쳤다면 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가 된다.
문제는 세입자들이 '집 구경'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어 매매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 서초동과 상도동에 집을 각각 집을 한 채씩 보유하고 있는 양모 씨(61)도 집을 매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전세를 놓고 있는 상도동 집을 공인중개업소에 내놨지만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이 집을 전세 계약은 1년 남짓 남아 있다. 중개인에게 "매수자가 안 나타나느냐"고 물었더니 "세입자들이 집을 보여주지 않아 거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중개인은 "전세가 껴 있는 집을 팔려고 내놓는 경우는 세입자는 대부분 집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한다"며 "기존에 살던 집이 팔리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4년 전세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괜히 주인이 바뀌길 바라겠는가"라고 했다.
이처럼 전세 낀 집 매도를 두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충돌이 잇따르면서 계약갱신에 대한 분쟁과 소송 건수는 급증하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4월까지 ‘계약갱신·종료’ 관련 분쟁 접수 건수는 97건으로, 지난해(122건)의 80%에 육박했다. 지난해 새 임대차보호법 시행 직전인 1~7월 12건에 불과하던 이 분쟁 접수는 8~12월 110건으로 크게 늘었다. 전년 동기(7건) 대비로도 15.7배 증가했다.
임대차 분쟁 관련 상담 건수도 지난해 8월 이후 올 4월까지 월평균 7575건에 달했다. 법 시행 전 월평균 4000~5000건을 유지한 것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2+2년’ 연장권을 쥐고 버티는 세입자를 내보내기가 어려워지자 집주인들이 집을 비워주는 명목으로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퇴거위로금’이라 불리는 이 비용은 집주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는 세입자에게 지급하는 일종의 합의금이다.
강남구 논현동의 U공인 대표는 ”최근 세입자들은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집을 비워주면서도 이사비와 복비에 위로금까지 수백만원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엔 전세 만료 후 퇴거에 동의했던 세입자가 돌연 400만원가량 요구하면서 들어주지 않을 경우 2년을 더 살겠다고 나와 집주인이 울며 겨자먹기로 지원해준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전세금 10%’ 선지급도 관행이 돼가고 있다. 세입자가 새로운 집에 이사를 가려면 전셋값의 10% 수준을 계약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이 자금을 집주인이 미리 내주는 경우가 많다. 실제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나가는 세입자에게 보증금 일부를 먼저 내주는 것은 관행”이라며 분위기를 전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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