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거래소 "나부터 살자"…투자자 대혼란

입력 2021-06-16 17:20   수정 2021-07-17 00:01


지난 15일 밤 10시, 암호화폐거래소 코인빗은 36종의 알트코인(비주류 암호화폐)에 사실상의 퇴출 선고를 내렸다. 렉스, 이오 등 8종은 상장폐지를 예고했고 메트로로드, 서베이블록 등 28종은 유의종목으로 지정했다. 코인빗에서 원화로 사고팔 수 있는 암호화폐가 총 70종인데, 절반 이상이 정리 대상에 올랐다. 이들 암호화폐는 기술력이나 인지도가 높지 않은 이른바 ‘잡(雜)코인’으로 분류된다.
심야 기습 상폐까지… 퇴출, 또 퇴출
금융당국에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를 앞둔 암호화폐거래소들이 잡코인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상장된 알트코인 종류가 너무 많으면 심사 과정에서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상장폐지는 그 거래소에서는 더 이상 사고팔 수 없다는 뜻이고, 유의종목 지정은 상장폐지를 염두에 둔 수순으로 통한다. 암호화폐 가격에는 둘 다 악재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주요 암호화폐거래소 20곳 중 11곳이 정부의 암호화폐 시장 관리 방안이 발표된 지난달 28일 이후 상장폐지 또는 유의종목 지정에 나섰다. 국내 최대 거래소 업비트는 11일 마로, 페이코인 등 30종을 무더기로 원화거래중지·투자유의종목 대상으로 지정했다. 업계 중위권인 에이프로빗, 지닥, 후오비코리아, 플라이빗 등도 종목 수를 줄여나갔다. 빗썸, 코인원, 코빗 등이 특정 코인을 퇴출시킬 것이란 ‘미확인 지라시’가 SNS에 돌기도 했다.

상장폐지나 유의종목 지정은 거래소 내부 판단에 따라 이따금 이뤄졌던 조치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리 규모가 큰 데다 주말이나 심야에 기습적으로 발표되면서 시장의 변수로 떠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VASP 신고 때 보유 코인 목록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추가 정리가 이뤄질 수 있다”며 “모든 것이 업계 자율에 맡겨졌던 시장이 정비되는 과정에서 잡코인 정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허위 공시를 이유로 업비트에서 상장폐지된 고머니2 측은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으나 16일 법원에서 기각당했다. 거래소가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시를 부실하게 한 코인을 상장폐지한 것은 정당하다는 결정이어서 거래소의 ‘잡코인 청소’가 가속화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개발사·투자자 “상폐 부당” 소송도
거래소들은 나름의 평가 기준을 두고 결정했다고 강조하지만 코인 개발사와 투자자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내부 기준 미달’이나 ‘투자자 보호’와 같은 모호한 설명만 내놓고 거래를 중단하고 있어서다.

한 거래소에서 상장폐지된 코인이 다른 거래소에선 멀쩡하게 거래되기도 한다. 알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을 더 높이고, 투기 수요를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호 고려대 블록체인연구소장(컴퓨터학과 교수)은 “거래소마다 상장·상폐 관련 기준이 너무 달라 투자자의 혼선이 크다”며 “주식시장처럼 표준화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법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했다.

국내 암호화폐거래소들은 보통 100~200개, 많게는 500개 안팎의 코인을 상장시켜왔다. 코인의 사업성이 어찌 되든 간에 거래소는 손바뀜만 많이 이뤄지면 수수료를 버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들은 “거래 중단 리스크를 감안해 당분간 알트코인 투자에 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 거래대금이 줄고 있는 만큼 퇴출 코인이 늘어난다고 해서 다른 코인에 돈이 몰리는 ‘반사이익 효과’도 거의 없는 상태다. 금융감독원은 14일 거래소들에 공문을 보내 “최근 상장폐지·유의종목으로 지정했거나 지정할 코인 목록을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임현우/박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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