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 대표로 MZ세대 이준석이 선출됐을 때 가장 놀랍다는 반응은 세습 정치인이 즐비한 일본에서 나왔다. ‘역시 한국이야!’ 좋게 보면 ‘다이내믹 코리아’요, 나쁘게 보면 극단적인 스윙이다. 당대표가 81세(김종인)에서 무려 45년 젊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도 놀랐으니까. 반면 30~40대 총리·당대표가 흔한 서구에선 ‘뭐 대단한 일이냐’는 반응이다.
‘청년무사’의 홀연한 등장에 강호의 무림고수들은 영 심기가 편치 않다. 애써 태연한 척하거나, 꼬투리 잡거나, 당혹과 충격을 금치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치판 586까지 졸지에 꼰대로 전락할 처지인 탓이다. 운동권 경력을 훈장삼아 3~4선씩 챙긴 586들이 수구 기득권이 됐음을 이준석의 등장이 일깨운 것이다. 좌든 우든 586은 한국 정치에서 근 20년간 과잉대표돼왔다. 21대 의원의 55%(166명)가 50대다. 60대(90명)와 70대(3명)를 합치면 무려 86%(259명)에 이른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 말마따나 ‘세대교체이자 시대교체’인가. 그간 보수야당이 숱하게 당명을 바꿔도 꿈적 않던 국민 관심이 당대표 한 명이 바뀌자 갑자기 증폭된 것을 달리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0선(選)’ 이준석의 파격 행보는 기존 ‘정치 문법’과도 판이하다. 조직, 유세차량, 문자 대량 발송 등 ‘3무(無) 유세’로도 당대표에 올랐다. SNS 시대에 주목을 끄는 법을 잘 알고, 10년 정치 경력의 만만치 않은 내공으로 콘텐츠도 채우고 있다.
그는 골치아픈 사안을 피하거나 변죽만 울리지 않아 대중이 주목하게 한다. 국민의힘의 아킬레스건인 ‘탄핵의 강’을 TK 심장인 대구에 가서 정면돌파했고, 전임 대표의 트레이드마크였던 경제민주화에 대해선 직설화법으로 그 허상을 지적했다. 공정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노력과 실력대로’여야 진짜 공정이고, 성장도 분배도 시장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이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60~70대 보수층까지 공감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과도한 능력주의’ ‘엘리트주의’란 비판도 있다. “과학고, 하버드대 출신으로 흙수저 청년을 대변할 수 있을까”(금융인 A씨) “시대정신이 국민통합과 격차해소인데 적합할지 의문”(다선 B의원)이란 것이다. 그의 ‘거친 생각’에 대한 ‘불안한 눈빛’들은 실수와 헛발질만 기다릴 것이다. 심지어 방명록 글씨 갖고도 시비를 걸지 않나.
젊고 경험이 일천하기에 그럴 위험은 상존해 있다. 하지만 그에겐 ‘상계동에서 큰 하버드 출신’이란 형용모순의 스토리가 있다. 서울의 대표적 서민 주거지인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에서 자랐고, 출마도 노원병(丙)에서만 했다. 조국 같은 강남좌파와 대척점에 있는 ‘강북우파’ 정서도 안다. 하버드 출신이란 것도, 어느 나라든 정치는 엘리트가 한다는 점에선 시빗거리가 되기 힘들 듯하다.
그의 저서 《공정한 경쟁》(2019)을 보면 그보다 보수와 자유의 가치를 더 잘 설명할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싶다. “최저임금은 임금구조 왜곡을 가져오며, 기본적으로 임금은 시장에서 결정돼야 한다.” “고교까지 의무교육을 하되, 경쟁체제를 도입하고 과락을 만들어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진보세력이 환경·노동·인권이란 3대 가치를 내세워 집권에 성공한 것처럼 보수는 다시 한 번 매력적인 안보·경제·교육관을 정립해야 한다.”
확 바뀐 민심은 지역·진영 갈등에 기댄 여야의 ‘적대적 공생’ 구도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그런 민심이 투영된 ‘이준석 현상’의 주인공이 반드시 이준석이란 보장은 없다. ‘안철수 현상’의 안철수가 그랬듯이. 그런데도 유권자들이 이준석을 괄목상대하는 것은, 퇴행정치에 죽비 같은 역할을 기대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잠룡들’은 넘쳐나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잡룡들’의 잔치 아닌가.
어느덧 세상은 크나큰 변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접어들었다. 장강(長江)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고 있다. 이게 불편한 정치인은 개그맨들의 멘토인 이경규의 말을 기억해둘 만하다. “세상이 바뀔 때는 둘 중 하나다. 뒤로 물러나든지 내가 바뀌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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