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독서 큐레이션] 경험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면…

입력 2021-06-17 18:24   수정 2021-06-18 02:33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유행한 때가 있었다. 인간의 사고와 시야가 얼마나 기존 지식의 영향을 크게 받는지를 강조한 표현이다. 알기 위해선 여러 종류의 교육과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직접 경험으로 아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람이 아무리 부지런하다 할지라도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흔치 않은 경험과 남다른 사고를 바탕으로 시야를 넓히고, 세계관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간접 경험을 담은 책 세 권이 새로 나왔다.

《북극 이야기, 얼음 빼고》(김종덕·최준호 지음, 위즈덤하우스)는 평생에 한 번 방문하기도 힘든 북극권을 수십 차례나 다녀오면서 축적한 귀한 경험담을 생생하게 전하는 책이다. ‘북극 전문가’로 불리는 저자가 10여 년간 33번이나 시행한 북극권 현지조사의 경험이 곳곳에 녹아 있다.

이 책은 ‘온난화’ ‘과학 연구’ ‘탐사와 개발’ 같은 온대 지역의 보통 사람들이 지닐 법한 흔한 관점으로 북극에 접근하지 않는다. 북극 역시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이 살아온 생활 터전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사람의 욕망과 감정이 곳곳에 서려 있다.

오로라는 외지인에겐 아름답게만 보인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짧은 삶을 살아가는 원주민의 눈에는 지켜주지 못한 가족, 생존을 위해 잡아먹은 동물의 영혼이 불쑥 나타나 말을 걸듯 꿈틀대다가 사라지는 듯한 자책감이 반영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북극은 빙산과 북극곰으로 대표되는 과학 연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현대 세계와 촘촘하게 얽힌 동시대의 공간이다. 21세기 북극은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주요국의 이해관계가 뜨겁게 충돌하는 최전선이다. 상아 거래 금지의 영향으로 때아니게 불어닥친 매머드 엄니 발굴 붐은 북극권이 결코 우리와 동떨어진 곳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하얀 토끼를 따라가라》(필립 휘블 지음, 흐름출판)는 배고픔과 이성, 의지와 자유, 신의 존재, 미와 예술, 삶과 죽음 같은 철학의 위대한 질문들에 대해 편안한 대화체로, 쉽고도 흥미로운 해법을 제시하는 철학 입문서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할리우드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하얀 토끼’는 다른 세상을 접하도록 하는 철학의 은유이며 상징이다.

저자는 “철학이라는 안경을 끼고 보면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것들도 더욱 날카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다”며 새로운 프런티어로의 안내자를 자임한다. 머리 아플 것만 같은 허다한 철학서들과 달리 책장을 넘기다 보면 슈퍼마켓 매대에서 맛있는 식재료를 고르는 듯한 편안한 느낌을 받게 된다.

《만화미학 아는 척하기》(박세현 지음, 팬덤북스)는 영화관에서 먹다 버리는 팝콘 취급을 받던 만화 속에 숨어 있는 심오한 예술성을 간파해 제시한다. 익숙하게 즐기지만 학문적 탐구의 대상으로는 낯선 만화를 예술사와 미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풀이했다.

원시 동굴벽화부터 그리스·로마 시대 가면극, 중세 시대 판화, 현대의 웹툰까지 만화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만화의 다양성과 미학적 특징을 글뿐 아니라 ‘만화’로도 풀었다. 주제별로 익살스러운 삽화를 곁들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색다르게, 깊이 있게, 가볍게 즐기면서 절로 만화를 보는 눈을 뜨게 한다. 책을 덮고 난 후 보이는 만화의 세계가 결코 과거와 같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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