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미국 중앙은행(Fed)에 따르면 최근 종료된 총 45억달러(약 5조900억원) 규모의 TALF 중 58%인 약 26억달러(약 2조9400억원)를 국내 9개 기관에서 출자받은 EMP벨스타의 펀드가 집행했다. 한국 기관들의 출자금 5억8000만달러(약 6500억원)를 바탕으로 Fed로부터 26억달러를 빌려 일시적으로 신용 경색을 겪은 미국 중소기업과 소비자 등에게 대출해줬다는 뜻이다.
TALF는 일시적으로 금리가 치솟은 AAA등급의 대출 채권(자산유동화증권)을 민간 투자자들이 유리한 조건에 사들일 수 있도록 설계한 프로그램이다. Fed는 자산운용사들이 펀드를 조성하면 출자금의 5~20배에 달하는 돈을 약 1%의 초저금리로 빌려준다. 운용사들은 미국 국채(AA+)보다 안전한 AAA 대출 채권에 투자하면서 레버리지 효과를 통해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Fed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처음 내놨고, 지난해가 두 번째 프로그램이었다.
이번 TALF에서 EMP벨스타는 블랙록, 핌코, 베어링 등 세계적인 운용사들을 모두 큰 차이로 제쳤다. 핌코는 1억3600만달러(전체의 3%), 블랙록은 1억1300만달러(2.6%), 베어링은 1억900만달러(2.5%)를 집행하는 데 그쳤다.
비결은 ‘스피드’였다. 금융위기 당시 TALF를 경험한 글로벌 운용사들은 이번에도 앞다퉈 펀드 조성에 나섰지만 2개월 만에 5억8000만달러를 모은 한국 기관들을 이길 순 없었다. 노란우산공제회(1억달러) 지방행정공제회(1억달러) 과학기술인공제회(1억달러) 롯데손해보험(1억달러) 신협중앙회(7000만달러) 한화손해보험(3000만달러) 현대해상(2000만달러) 산림조합중앙회(3000만달러) 군인공제회(3000만달러) 등이 출자했다.
이준호 EMP벨스타 한국 대표(사진)는 “금융위기 땐 한국 기관들로부터 3억달러의 TALF 펀드를 모집하는 데 6개월이 넘게 걸려 집행 실적이 7위에 그쳤다”며 “당시에는 자산유동화증권에 대한 기관들의 이해도가 낮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10여 년 만에 분위기와 실력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EMP벨스타가 직접대출 대상 기업을 발 빠르게 발굴한 것도 조기 투자 집행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다른 운용사들은 유통 시장에 나온 대출채권담보부대출(CLO)을 입찰을 통해 사들였지만, EMP벨스타는 기업들과 사전에 협의해 사들일 CLO의 발행을 주도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마자 TALF 프로그램이 시행될 것으로 예상하고 펀드 조성과 동시에 자금 집행을 준비했다”며 “덕분에 약정액의 80%를 소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MP벨스타는 이번 투자로 연 10% 가까운 수익을 투자자에 돌려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손실 위험이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익률이다.
EMP벨스타는 한국계 미국인인 대니얼 윤 회장과 이 대표가 2007년 설립했다. 한국 기관에 미국 크레딧 시장에서의 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골드만삭스PIA, SK그룹과 함께 액화천연가스(LNG)를 이용한 초저온 물류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김채연/유창재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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