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사진)이 17일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 참석해 "백신이 보급되면서 세계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일자리 위기는 여전히 진행중"이라면서 "사람 중심의 회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총회는 화상으로 진행됐으며, 한국 대통령이 ILO 총회에 참석한 것은 1991년 ILO 가입 이후 문 대통령이 처음이다. 그는 기조연설을 통해 "노동시장의 어려움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어질지 모른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한국판 뉴딜 계획을 언급하면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 나은 일자리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공정한 전환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녹색기술 분야 핵심인재를 양성해 신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직업훈련체계를 개편해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로 원활히 이동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설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주목받은 '필수 노동자'의 처우와 관련해서는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사람을 중심에 놓고 연대와 협력, 나눔과 포용의 길로 함께 나아가자"고 말했다.
한편, 이번 ILO 총회는 지난 3일부터 오는 19일까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람 중심 회복'을 주제로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17일 오후 8시부터 90분간 화상으로 진행된 제109차 ILO 총회 '일의 세계 정상회담' 세션에 참가해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어 두번째 기조 연설자로 나섰다.
각 대륙을 대표하는 국가 정상과 노사정 대표 여러분,
코로나 위기를 넘어 '사람 중심 회복'을 추구하는 ILO의 노력에 감사드리며, ILO 총회 '일의 세계 정상회담'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대표로 함께하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ILO는 지난 100년, 인류의 자유와 존엄, 경제적 안정과 기회의 균등을 실현해왔고, 일자리 창출과 노동기본권 향상의 선두에 서 있었습니다. 코로나 극복의 과정에도 각국 노사정 대표들과 '글로벌 회담'을 개최하여 사회적 대화를 통한 포용적 위기극복을 독려했습니다.
노동의 가치를 지키고, '언제나 일과 함께하는 세계'를 위한 오늘의 정상회담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일자리 불평등을 막는 데 지혜와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사무총장님,
각국 정상과 노사정 대표 여러분,
노동은 인간 존재의 근거이며, 노동을 위한 일자리는 우리 삶의 기초입니다. 노동을 통해 우리는 사회 안에서 연결되고 자아를 실현하면서 인생의 보람과 의미를 찾습니다.
세계는, 경제발전을 통해 일자리의 양과 질을 높여왔습니다. 또한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노동권과 노동의 가치를 향상시켜 왔습니다. 완전 고용과 노동자의 생활수준 향상을 추구했던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일자리는 이제 모든 나라의 핵심적인 정책목표가 되었습니다. 나 역시, 정부 출범 초기부터 일자리가 성장이고 최고의 복지라는 믿음으로, 고용의 양과 질을 함께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한국 정부는 각종 세제와 예산을, 고용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과 함께 장시간 노동시간을 개선하고, 최저임금을 과감하게 인상하여 소득주도 성장을 포함하는 포용적 성장을 추구했습니다.
또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노동시장 격차 해소, 나아가 노동 존중사회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해왔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감염병이 전 세계를 흔들었습니다. 무엇보다 노동과 일자리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전 세계 1억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영업 제한과 근로시간 감소까지 고려하면, 전일제 일자리가 2억 5천만 개 이상 사라졌습니다.
세계 금융위기 때보다 몇 배 큰 타격입니다. 문제는 고용위기가 취약계층에게 더 가혹하다는 것입니다.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층, 대면서비스업 종사 비중이 높은 여성, 고용 보호가 취약한 임시·일용직 노동자들의 일자리부터 먼저 충격을 받았습니다.
백신이 보급되면서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있지만, 일자리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경기에 후행하는 고용의 특성을 생각하면 노동시장의 어려움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지 모릅니다. ILO와 함께 모든 나라가 일자리를 지키며 사람 중심의 회복을 추구해야 할 때입니다.
사무총장님,
각국 정상과 노사정 대표 여러분,
우리는 하루빨리 코로나를 극복하고 일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 한 기업, 한 나라의 회복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 모든 기업, 모든 나라가 골고루 함께 회복해야 일자리를 지키고 불평등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대면 영업의 위축과 일자리 상실, 소득 감소, 불평등과 같이 코로나가 초래한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포용적인 일자리 회복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미 시작되고 있는 일자리의 대변화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ILO가 추구하는 '사람 중심 회복'입니다. 그러한 회복이어야만 지속가능하며 복원력 높은 회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느 한 경제주체의 힘만으로는 이뤄낼 수 없습니다. 시장 기능에 맡겨서는 풀 수 없는 과제입니다. '모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힘을 모으기로 했던 'ILO 100주년 선언'의 실천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한국은 코로나 위기를 먼저 겪었지만, 국민들이 스스로 방역의 주체가 되어주었고, 연대와 협력의 힘으로 이웃을 배려하며 방역 속에서 일상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일자리 위기극복을 위해서도 연대와 협력, 나눔과 포용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와 고용이 급격히 위축되던 지난해 7월, 한국의 노·사 대표들은 인력 조정 대신 휴직과 노동시간 단축에 합의하여 일자리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은 그동안 노사와 지역주민, 지자체가 양보하고 협력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을 꾸준히 확산해왔습니다. 그중, '광주형 일자리'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23년 만에 국내 완성차 공장 설립이라는 성과를 이뤄냈습니다.
현재 여덟 개 지역에서 '상생 협약'이 체결되었고, 고용위기 극복에 노사, 지자체가 함께하며 총 460억 불 투자를 통해 13만 개 일자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정부도 노사의 상생 노력을 적극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나누기 위해 고용유지지원금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재정을 통해 취약계층에게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면서 공공부문이 일자리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민 취업 지원제도, 전 국민 고용보험 등으로 실직자를 더욱 두텁게 보호하고, 생계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상병 수당 도입 등 복지확대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위기가 불평등을 키웠던 과거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용안전망과 사회안전망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사무총장님,
각국 정상과 노사정 대표 여러분,
당면한 위기극복을 넘어 더 나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드는 것으로 이어질 때, 진정으로 '사람 중심 회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로 디지털·그린 경제 전환이 빨라지고, 일자리의 미래에도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습니다.
데이터·네트워크를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가 창출되고, ESG 경영을 통해 저탄소 전환에 동참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신기술·신산업 분야 일자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고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1,400억 불의 재정을 투자하는 '한국판 뉴딜'을 추진 중입니다. 디지털·그린 분야를 중심으로 2025년까지 190만 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날로 가속화되는 경제·사회 구조변화 속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 나은 일자리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공정한 전환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소프트웨어·인공지능·녹색기술 분야 핵심인재를 양성해 신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고, 직업훈련체계를 개편하고 취업지원 서비스를 강화하여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로 원활히 이동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플랫폼 노동 등 새로운 형태의 고용 관계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노동자와 사용주의 구분을 전제로 한 기존의 노동 보호 체계를 보완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국제노동기준을 확립하며 노동권 확대를 위해 애써온 성과가 이어질 수 있도록 ILO를 중심으로 해결방안을 함께 모색하게 되길 기대합니다.
가이 라이더 사무총장님,
각 대륙을 대표하는 국가 정상과 노사정 대표 여러분,
코로나 위기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노동에 의존하며 일상의 상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는 역설적으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의 노동 가치를 느끼게 해주었고, 우리는 '필수 노동자'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은 필수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결국에는 공동체의 이익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지만, 충분한 처우 개선에는 아직 거리가 멉니다.
'사람 중심 회복'의 시작은 우리 주변에서 마주치는 노동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일자리의 양과 질을 높이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사람 중심 회복'을 통해서만 '사람 중심 경제'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사람을 중심에 놓고 연대와 협력, 나눔과 포용의 길로 함께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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