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성장은 끝난 듯 보인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 무렵만 해도 경제성장은 자연법칙처럼 들렸다. 농업이 주요 산업이던 1800년대 후반에도 전기가 발명되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있었던 1900~1950년에도 미국의 경우 평균 2%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경제성장률은 1% 안팎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이벤트 탓으로 돌리던 경제침체가 장기화되자 저성장을 ‘뉴노멀’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하지만 기술은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다. 많은 경우 디지털 시대에 기술 발전을 경제성장의 핵심으로 간주하지만, 사실 기술 발전과 경제성장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경제성장은 인적, 물적자본의 물리적 증가와 이것만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요인에 의해 이뤄진다. 그리고 이 요인을 생산성 증가라고 한다. 생산성은 무능한 관리자를 교체해도 높아질 수 있고, 필요한 부품을 적시에 공급하는 재고관리기법에 의해서도 개선된다. 상품이나 공정이 첨단 기술인지 여부와 생산성 그리고 경제성장은 무관하다는 의미다. 물론 기술은 경제성장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인공지능 기반의 스마트공장은 생산비용을 낮춰 생산성을 높인다. 배터리 기술 발전, 클라우드 기술 등 디지털로 전환하는 오늘날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기술의 변화와 생산성 증가는 별개의 개념이다. 이는 동시에 경제성장의 둔화가 창의성이나 기술이 퇴보해 발생하는 현상이 아님을 의미한다.
비용절감을 위해 웨이터 수를 절반으로 줄이면 레스토랑의 서비스 수준도 절반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상품은 생산을 증가시키면 비용이 감소하지만, 서비스는 비용이 증가한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비용과 가격이 함께 움직이는 시장경제에서 서비스 가격이 상품보다 높게 된다. 보몰은 이러한 현상을 두고 ‘서비스의 비용 질병’이라고 불렀다.
문제는 상품 수요는 소득에 민감하지 않은 반면 서비스 수요는 소득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일반인과 빌게이츠의 소득 차이는 수천, 수만 배 차이가 나지만 상품에 소비하는 돈은 그렇게 차이나지 않는다. 반면 여행이나 법률 서비스, 개인비서 등 서비스 지출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비교할 수 없이 차이가 난다. 상품은 생산성이 개선될수록 더 저렴해지므로 소비자는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것을 소비할 수 있어 풍요롭다고 느끼고, 상품 소비에서 아낀 만큼 더 많은 서비스를 구입한다. 즉, 생산성 증가가 큰 분야에서 낮은 분야로 소비가 이전하는 것이다. 이는 상품생산 분야에서 남는 노동력이 서비스 분야로 이전하는 결과를 낳는다. 즉, 생산성이 증가하는 분야에서 생산성이 정체된 산업으로 노동력이 이전하지만, 결과적으로 사회가 획득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양은 비슷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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