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곳곳이 지뢰밭 '위험 한국', 대응 매뉴얼 있기는 한가

입력 2021-06-20 16:57   수정 2021-06-21 06:40

‘잡히지 않는 불길’, ‘가슴 먹먹한 죽음’이라는 똑같은 패턴의 물류창고 비극을 도대체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나. 쿠팡 덕평물류센터의 불길이 36시간 만에 잡혔지만 실종됐던 광주소방서 119구조대 김동식 구조대장은 시커먼 주검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240여 임직원은 무사했지만 ‘비대면 시대의 총아’라는 물류산업 전진기지에서의 어이없는 사고에 허탈함을 감추기 힘들다.

소방관 순직 소식에 문재인 대통령은 “마음이 아프다”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메시지를 SNS에 올렸다. 나름 진심을 담았겠지만 ‘뒷북’이자 ‘면피용’이라는 비판은 불가피하다. 48명의 사상자를 내 ‘최악의 물류창고 참사’로 불린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가 불과 1년 전 일인데 달라진 게 전혀 없어서다. 당시에도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을 관저 등으로 불러모아 이틀 연속 긴급대책회의를 열고는 ‘빈틈없는 재발방지 대책’을 다짐했다. 하지만 말뿐이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물류창고 사고위험은 입이 아플 만큼 지적돼왔다. 수많은 전기장치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전선들이 뒤엉킨 데다 먼지까지 쌓여 있어 여차하면 대형화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의 최초 발화가 지하 2층 콘센트로 추정된다는 점은 예고된 인재의 성격이 다분함을 시사한다. 물류센터는 폐쇄된 공간에 종이상자 비닐 스티커 같은 인화물질이 가득한 데다 내부구조가 미로처럼 설계돼 유사시 화재 진압도 어렵다. 그런데도 ‘방화구획’으로 불리는 연소확대 방지시설도 제대로 설치 안 된 것으로 전해진다.

쿠팡의 안전 불감증도 걱정스럽다. 이 물류센터에선 3년 전에도 소규모 화재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예방조치가 없었다. 그간 화재경보가 여러 번 울렸는데 대피명령이 없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비대면 산업을 주도하는 만큼 쿠팡의 선제적 변화가 절실하다. 두 달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천지역 냉동 물류창고의 안전을 일제 점검했을 때 무엇을 한 것인지 궁금하다. 사고 관련 매뉴얼이 있기라도 한 것이지 도무지 믿음이 안 간다.

건물이 어이없이 주저앉아 충격을 던진 광주버스 참사가 불과 며칠 전의 일이다. 한두 번이면 실수일 수 있지만 반복되는 대형사고는 분명 시스템과 의식의 문제다. 한국인 DNA로까지 불리는 ‘빨리빨리’ 문화도 돌아봐야 한다. 이토록 안전에 소홀하면서 ‘비대면 시대’나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것은 사상누각을 짓자는 주장에 다름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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