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어도비를 소프트웨어 판매 회사에서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하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2년 뒤인 2013년엔 기존 오프라인 제품을 모두 버리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도전이었다. 회사 내부에서조차 “몇 년 안에 망할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나라옌은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결국 세상의 우려는 경탄으로 바뀌었다. 10년 뒤 어도비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됐다.
이들이 처음 만든 것은 어도비 포스트스크립트다. 종이에 문서와 이미지를 함께 출력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제품의 라이선스를 처음 구입한 회사는 애플이었다. 애플이 어도비 지분 15%를 인수할 정도로 관계가 좋았지만 1990년대 말 폰트 저작권을 두고 벌어진 이른바 ‘폰트전쟁’ 이후 두 기업의 관계는 악화됐다.
어도비의 두 번째 제품은 디자이너를 위해 1987년 내놓은 일러스트레이터다. 3년 뒤 출시된 디지털 사진 편집 툴 포토샵은 어도비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대표 상품이 됐다. 1991년엔 비디오 편집 툴인 프리미어를 선보이며 동영상 편집 시장에 진출했다. 어디에서든 문서를 쉽게 볼 수 있는 PDF, 이를 편집하는 아크로뱃도 1993년 차례로 개발했다. 이를 통해 가정용 컴퓨터로 출판물을 만드는 ‘데스크톱 퍼블리싱’ 시대를 열었다. 두 창업자의 꿈은 현실이 됐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생산부터 마케팅까지 이어지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어도비는 안정적인 수익모델을 확보하게 됐다. “당신이 기회를 찾기 위해 사용하는 렌즈는 당신이 얼마나 큰 야심을 가질지를 결정할 것이다. 그때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나라옌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담은 ‘어도비 크리에이티브 클라우드’와 아크로뱃 스캔 등이 포함된 ‘어도비 도큐먼트 클라우드’ 등 구독 모델 가입자들이 낸 비용은 지난해에만 92억3000만달러(약 10조4668억원)에 이른다. 전년 대비 20% 증가한 수치다. 클라우드 서비스 가입자가 늘면서 어도비는 2014년 이후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나라옌 취임 당시 30억달러 수준에 머물던 어도비 매출은 지난해 128억달러를 넘어 네 배가량으로 급증했다. 올해 매출은 15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로 디지털 전환 속도가 빨라진 데다 재택근무가 늘면서 클라우드 서비스 수요가 더 증가해서다. 글래스도어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미국 매체들이 가장 혁신적인 CEO로 잇따라 나라옌을 꼽는 배경이다. 존 도나호 나이키 CEO는 나라옌을 “심사숙고하고 결심이 서면 강철처럼 밀어붙이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애미트 아후자 어도비 익스퍼리언스 클라우드 부사장은 “다양한 트렌드의 접점을 연결하고 중요한 사항을 간결하게 뽑아내는 나라옌의 능력은 놀라울 정도”라고 했다.
인도 오스마니아공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86년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에 합류했다. 이후 애플에서 근무한 뒤 1996년 인터넷 사진공유 서비스를 개척한 픽트라를 공동 창업했다. 벤처투자자(VC)들로부터 투자금 1000만달러를 모았지만 ‘시대를 너무 앞선 서비스’라는 냉혹한 평가를 받았다. 그가 어도비에 수석 부사장으로 합류한 것은 1998년부터다. 이후 CEO에 오르기까지 9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15년간 자리를 유지해 실리콘밸리 최장수 CEO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가 어도비에서 강조하는 것은 소통과 변화다. 아이디어나 제안사항이 있는 직원은 누구나 나라옌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낸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어도비에서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은 누구나 답변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매 순간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소비자다. 코로나19 유행 초기 원격근무에 적응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그는 ‘우리의 우선순위가 적절한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소비자들이 집에서 일하게 되면 서비스도 바뀌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9월 스마트폰으로 편리하게 작업할 수 있는 새 PDF 서비스를 내놓은 이유다. 혁신을 향한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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