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연의 딜 막전막후] W컨셉 매각이 불러온 '나비효과'

입력 2021-06-21 18:08   수정 2021-06-22 00:05


“앞으로 3주만 시간을 주십시오. W컨셉은 우리가 가져가야 합니다. 무조건 기한 내 가격을 제시하겠습니다. ”

지난 3월 초, 신세계그룹 고위 관계자는 W컨셉을 보유하고 있던 국내 사모펀드(PEF) IMM 프라이빗에쿼티(PE)를 찾아가 인수의사를 밝혔다. 당시 W컨셉은 이미 CJ그룹, 국내 패션 플랫폼 무신사 등과의 협의가 막바지에 이른 상황이었다. IMM PE는 난감했다. 신세계의 태도에도 반신반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세계는 지난해 말부터 공개적으로 인수전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가 다른 후보가 나타나자 갑자기 적극적인 구애 작전을 펼친 것이다.

국내 1위 여성 패션 플랫폼 W컨셉의 주인은 그렇게 막판에 바뀌었다. 강희석 신세계 이마트 대표 주도하에 거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의지가 강했다. 신세계는 온라인 쇼핑 부문 SSG닷컴(쓱닷컴)을 내세워 약속대로 정확히 3주 뒤 막판 베팅에 나섰다. 가격은 물론 거래 조건도 기존의 다른 후보들보다 월등히 좋았다. W컨셉 인수는 신세계의 오랜 고심의 결과물이었다. 신세계는 지난해부터 패션 부문 확장을 위해 W컨셉 등 플랫폼 인수를 검토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냥꾼으로 변한 신세계
그룹 차원에서 결정을 내리자, 거래는 속전속결이었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양사 간 첫 만남부터 거래 종결까지 석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신세계와 협상했던 손동한 IMM PE 대표는 “신세계가 똘똘 뭉쳐서 움직이는 공격적인 DNA를 봤다”며 “빠른 판단으로 거래를 주도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룹 내 상당한 변화가 일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W컨셉 인수전 초반만 해도 신세계는 주목받는 후보가 아니었다. 최근 몇 년간 인수합병(M&A) 행보에 소극적이었던 데다 눈에 띄는 거래도 없었기 때문이다. 올초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1300억원 규모의 SK와이번스를 인수하자마자 한 달여 만에 2650억원을 투자해 W컨셉을 사들였다.

온·오프라인 유통 시장 주도권을 호락호락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밝혔다. 그중 1020세대가 주도하는 국내 온라인 패션 플랫폼 시장 규모는 약 60조원에 달해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체 패션 시장이 주춤했지만 온라인 부문은 오히려 성장했다. 쓱닷컴의 경우 신선식품과 생필품 부문 경쟁력은 높지만 패션 부문은 사실상 방치돼 있는 상태다. 쓱닷컴은 W컨셉을 인수해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를 주축으로 하는 젊은 층 이용자를 확보하게 됐다.
의류 플랫폼 업계 지각변동
신세계가 W컨셉의 기존 경영진 및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점도 이례적이다. e커머스 패션 부문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자체 인력보다 W컨셉 기존 인력을 유지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W컨셉의 경쟁력을 살리면서 기존 쓱닷컴과 자연스럽게 융화시키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의 W컨셉 인수 이후 대형 여성 의류 플랫폼 분야에선 ‘큰 장’이 벌어졌다. W컨셉을 탐냈던 무신사는 발 빠르게 선회해 한 달여 만에 또 다른 여성 패션 플랫폼 스타일쉐어와 29CM을 한꺼번에 인수했다. 그사이 카카오는 지그재그를 품었다. 여성 플랫폼의 대형 매물이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네이버는 브랜디의 소수 지분을 인수해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신세계 그룹이 W컨셉을 품자 벌어진 나비효과다.

표면적으로 스타일쉐어, 29CM을 품은 무신사가 이용자 수 기준으로 가장 앞서고 있지만 신세계, 카카오, 네이버 모두 투자를 늘리고 있어 향후 업계 판도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대기업들은 해외 판로 개척 등 다방면으로 사업 확장을 검토 중이다. 이들의 궁극적 목표는 같다. 트렌드에 민감한 MZ세대가 주축인 온라인 패션 플랫폼을 통해 미래 충성 고객을 확보하고 e커머스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플랫폼의 새로운 주인 중에 누가 제대로 ‘여심’을 공략할지 흥미진진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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