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화백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신작 ‘청명’ 연작(사진)을 통해서다. 이번에는 무채색에서 탈피해 주황색과 노란색, 파란색 등 형형색색의 아크릴 물감을 꺼내들었다. 구상과 추상을 오가는 이미지 밑에 깔린 화려한 색채가 생동감을 더한다. 그는 “색이 나를 유혹했다”며 “20여 년 전 사둔 물감을 우연히 꺼내 칠해보니 색이 너무 아름다워 색채 실험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몽유’에서는 다양한 색상의 신작을 비롯해 이 화백의 그림 3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여 년간 그가 그려온 회화 작업의 변화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1층 전시장에는 청명 연작 3점 외에 1999년에 그린 ‘강에서’ 연작 3점이 걸렸다. 배를 타고 본 중국 양쯔강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작품이다. 거친 붓질에서 험준한 산자락과 세차게 흐르는 강물의 호쾌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흰색 바탕에 붓으로 툭툭 선을 그어 상형문자나 서예작품처럼 보이는 추상회화들을 만날 수 있다. ‘허-14102’는 폭 5m의 캔버스에 열 번 안팎의 거친 붓질로 완성한 대작이다. 이 화백은 “스스로 그려진 그림”이라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입자와 에너지 등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표출된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붓질”이라고 설명했다.
2층 전시장에서는 그의 상징인 오리 모양의 도상이 그려진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오리로 보든, 배나 사슴으로 보든 상관없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그림을 그린 의도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관객들이 자유롭게 감상하고 해석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 덕분에 이 화백은 내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 ‘아방가르드: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 참여 작가로 선정됐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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