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정상회담에서도 의제에 오른 ‘공급망 인권’

입력 2021-07-12 06:03  

[한경ESG] S 따라잡기



지난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 결과물인 공동 성명의 내용 중에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취약계층과 소수 민족의 강제 노동이 동원되는 점에 대한 깊은 우려와 함께 ‘G7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강제 노동을 없애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그 성명을 토대로 한 세부적인 논의는 올해 10월쯤 예정된 G7 통상 장관 회의까지 조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논의가 이뤄질까. 이는 최근 주요 국가들의 입법 동향을 보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먼저 유럽연합(EU)은 기업에 ‘공급망 전체’의 환경·인권 등 현황에 대한 실사(due diligence)를 의무화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가 당초 올해 6월로 예정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법안인 ‘기업 지배 구조 및 공급망 실사에 관한 법률안’의 제출을 3분기로 소폭 연기하기는 했지만 예정대로라면 2024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에서도 자체 공급망 실사 법안 제정

이러한 EU 입법 동향과는 별개로 EU의 주요국인 독일은 최근 공급망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안(act on corporate due diligence in supply chains)을 제정했다. 이 법안은 2019년 12월쯤 발의됐는데 독일 연방의회는 올해 6월 11일 이 법안을 가결했다. 적용 대상은 시행 시점인 2023년부터 노동자 3000명 이상인 기업, 2024년부터 1000명 이상인 기업이고 실사 의무를 위반한 기업에 대해서는 최대 800만 유로(약 108억원) 또는 연매출 2%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이에 따라 폭스바겐·다임러·BMW 등 자동차 제조업뿐만 아니라 대형 의류업과 식품 제조업계 등 독일에 기반을 둔 글로벌 기업들은 인권·환경 보호, 아동 노동 금지 등에 관해 자사뿐만 아니라 협력사들을 대상으로 공급망 실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물론 포괄적인 실사 대상이 되는 협력사의 범위는 원칙적으로 독일 기업과 직접적으로 거래하는 1차 협력 업체에 한정되며 간접적 거래 관계에 있는 하위 협력사들에 대해서는 독일 기업이 잠재적 인권 침해를 확실히 인지하는 경우에만 실사를 의무화한 점에서 한계를 지적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법에 따르면 독일 기업과 거래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도 실사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한국 기업들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사정이 이렇다면 향후 G7 차원에서 논의될 핵심 의제 중 하나는 ‘기업의 공급망 실사 의무’가 될 것이라는 점은 꽤 분명해 보인다. 그러면 공급망 실사 의무를 정확히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기업의 책임 경영을 연구해 온 안건형 경기대 무역학과 교수는 논문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이드라인을 인용해 “기업 자신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관계에 있는 협력 업체, 공급망 내 사업장 등을 포함해 부정적 영향을 야기하거나 이에 기여할 수 있는 기업 활동을 피하고 그러한 영향이 발생한 경우에는 이를 예방 및 해결해야 할 의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OECD 가이드라인의 모델이 된 유엔 기업인권 이행 지침(UNGP : 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은 기업의 인권 존중 의무를 실현하기 위해 기업의 인권 실사(human right due diligence)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인권 실사의 4가지 요소로 △실질적·잠재적 인권 영향에 대한 평가 △평가 결과의 통합 및 실천 △대응 추적 △영향이 어떻게 다뤄졌는지에 관한 의사소통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공급망 실사 의무에 관한 논의는 갑자기 진행된 것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 이뤄져 온 것이라는 점, 따라서 EU와 독일에서의 입법 동향이 단지 유럽에 국한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논의의 속도가 상당히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을 우리 기업들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흐름이 이어진다면 머지않아 한국 기업들도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실사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실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미리 염두에 두고 대응 방안을 검토, 수립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유니클로 셔츠가 압류된 이유는?

미국 세관국경보호국(CBP)은 지난 1월 로스앤젤레스(LA)항에서 수입 통관 절차가 진행 중이던 유니클로 남성용 셔츠에 대해 중국 신장위구르 인권침해·강제노동과 관련한 수입 금지 조치를 위반한 혐의가 있다며 압류했다. 이에 대해 유니클로는 “제품에 사용된 면화는 신장위구르와 관계가 없다”며 금지 조치 해제를 신청했지만 CBP는 유니클로 측이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이 아니라는 증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며 기각했다.

이러한 조치는 일회성 조치가 아니었다. 미국 CBP는 2021년 5월 28일 중국 다롄오션피싱의 선단 전체가 어획한 해산물에 대한 수입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다롄오션피싱 선단 어선에서 많은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예상과 너무나 다른 조건에서 일하거나 폭력·착취 등이 자행되는 등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서 강제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를 두고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전쟁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하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EU·영국·캐나다도 2021년 3월 22일 동시에 중국 신장위구르 인권 침해와 관련된 중국 관료들을 상대로 재산을 압류하고 입국을 금지하는 조치를 실시했다는 점, 신장위구르에서 생산되는 면화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유니클로의 프랑스 법인이 지난 4월 강제 노동 혜택을 받는다는 이유로 프랑스 시민 단체 등으로부터 고발당한 점 등을 고려하면 공급망 내 인권 문제는 두 강대국만의 패권 다툼을 넘어서는 이슈라는 점이 확인된다.

특히 위구르족 강제 노동 문제는 G7 공동 성명에도 명시될 정도로 중요한 이슈다. 호주 싱크탱크인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 보고서에 따르면 위구르족 강제 노동 문제와 연계된 기업은 최소 82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고 산업 분야에서도 유니클로와 같은 의류 기업뿐만 아니라 애플·마이크로소프트(MS)·구글·델·아마존 등 미국의 정보기술(IT) 기업과 닌텐도·BMW·폭스바겐·도시바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일본 정부는 유니클로 사태를 심각히 받아들이고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금융청과 도쿄증권거래소는 6월부터 시행되는 상장 기업의 지배 구조 지침에 인권 존중 관련 규정을 넣을 예정이다.

일본 기업들도 신속히 움직이고 있다. 아사히그룹홀딩스는 올해부터 강제 노동 등 인권 침해 리스크가 있는 커피 원두 등과 관련해 해외 거래처 현지 조사에 나섰고 도시바는 강제 노동 정황이 확인된 기업과의 거래를 중단했으며 이토추상사는 말레이시아·브라질 등의 거래 농장·공장에서 아동 노동이나 위법한 저임금 등의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또한 부동산 개발 회사인 미쓰비시지쇼는 건설 현장에서 쓰이는 일부 합판 등에 대해 국제 인권 기준을 충족하는 물량으로 교체했다.

이와 같이 일본 정부와 기업들이 태세를 신속히 전환하는 이유는 바로 ‘공급망 내 인권 리스크’ 때문이다. 공급망 내 인권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하면 제재와 소송, 기업 평판의 하락 등과 같은 사후적 불이익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산품을 판매하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와 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을 정확히 인지하고 대처해야 한다. 특히 ESG 경영이 눈앞의 목표가 된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공급망 내 인권 리스크를 헤지(hedge)하기 위한 첫째 실천 과제는 ‘공급망 인권 실사’일 것이다.

오지헌 법무법인 원 ESG센터 수석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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