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은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가 되기까지 ‘초고속’ 성장 스토리를 써 왔다. 1988년 뉴욕 맨해튼에서 8명의 동료들이 작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블랙록은 불과 30여 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큰 자금을 굴리는 투자기관으로 군림하게 됐다. 2020년 블랙록의 펀드 순자산총액(AUM)은 8조7000억 달러로 세계 1위였다. 블랙록의 운용 자산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큰 나라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고는 없다.
현재 블랙록은 전 세계 38개국에서 1만6000명의 직원들이 국부펀드와 연기금, 보험사, 은행 자금을 투자받아 운용하고 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위기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승부사’ 기질로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주도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상황에서 경쟁사를 이기는 블랙록과 래리 핑크의 힘은 위기 관리로 꼽힌다. 또 마케팅의 귀재로 시장을 선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가 따른다.
‘많이 얻는 것’보다 ‘적게 잃는 데’ 중점 둔 자산 운용 원칙
블랙록에는 DNA처럼 새겨진 ‘실패의 교훈’이 있다. 래리 핑크는 그의 첫 직장인 뉴욕 투자은행(IB) 퍼스트보스턴에서 맛본 최악의 실패를 새로운 기회의 전환점으로 삼았다. 채권 트레이더였던 그는 특히 주택담보부증권(MBS) 시장을 개척하는 데 크게 기여해 입사 10년 만에 경영이사이자 채권부문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이자율 방향을 잘못 예측하면서 한순간에 1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 쫓기듯 회사를 나왔다.
이때를 회상하며 래리 핑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돈을 잃고 나니, 좋은 시절에도 늘 ‘리스크’를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가 정의하는 리스크 관리는 위험을 회피하거나 무(無) 위험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안고 있는 위험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리스크 관리에 역점을 두어 투자업에서 다시 출발하기로 결심했다. 블랙록의 투자 철학인 ‘많이 얻는 것’보다 ‘적게 잃는 데’ 중점을 둔 자산 운용 원칙은 그렇게 탄생했다.
블랙록이라는 이름은 사모펀드 ‘블랙스톤’에서 유래했다. 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회사인 블랙스톤에서 자회사 형태로 자산 운용 부문을 공동 창업하게 된다. 로버트 카피토, 바바라 노빅, 벤 골룹, 수전 와그너, 휴 프레이터, 랠프 슐로스타인, 케이스앤더슨과 함께였다. 로버츠, 벤, 바바라는 퍼스트보스턴에서 함께 근무한 동료이자 MBS의 개척자들이었다. 이들은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블랙록의 포트폴리오에 철저한 위험관리 체계와 함께 수탁자 책임(fiduciary duty)을 강조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설립 때부터 전체 직원의 25%가 리스크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블랙스톤금융관리(Blackstone Financial Management)’로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래리 핑크의 사업은 번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블랙스톤 그룹의 회장인 스테판 슈워츠먼과 소유권 문제로 충돌한 뒤, 블랙스톤(Blackstone)보다 한 단계 높은 블랙록(Blackrock)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1995년 블랙스톤으로부터 독립해 미국의 또 다른 금융기관인 피앤씨로부터 투자를 받아 독립법인으로 새출발을 했고, 1999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주당 14달러에 상장을 하게 된다.
블랙록의 위험관리·투자 솔루션 ‘알라딘(Aladdin)’도 포트폴리오 운용에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블랙록은 위험관리 체계를 수천 대의 컴퓨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 1999년 금융 기술의 일환으로 블랙록 솔루션인 알라딘을 선보였다. 알라딘은 펀드매니저들을 위한 실시간 트레이딩 투자 플랫폼이다. 리스크 분석과 종합적인 포트폴리오 운용, 트레이딩 및 운영 도구를 단일 플랫폼에서 제공하며, 투자 의사결정과 리스크 관리를 함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알라딘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조기 경보로 위험 자산을 사전에 청산하는 데 도움을 줬다. 600명 이상의 전문가와 함께 데이터 분석 ‘공장’을 운영하며 종합 서비스 플랫폼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래리 핑크 회장은 글로벌 자산 시장의 ‘슈퍼 허브’로 통한다. 그는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연중 절반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고객들을 방문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 스위스 중앙은행(SNB) 총재인 필립 힐데브란트, 전 미국 재무부 관료인 켄드릭 윌슨 등 전직 정책입안자 스카우트에 공을 들였고,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인 티모시 가이트너와 가깝게 지내는 등 인적 네트워크를 ‘사회 자본’으로 축적했다. <슈퍼 허브>의 저자인 산드라 나비디에 따르면 블랙록의 연결선은 금융계 전반에 걸쳐 있으며, 래리 핑크는 ‘해결사(Mr. Fix-It)’로 불렸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는 그를 ‘월가의 제왕’으로 만들어 놓았다. 각국 정부에서 블랙록에 도움을 구하고, 가이트너 전 재무부 장관은 300억 달러 규모의 위험한 주택대출증권을 분석하고 매각하는 일을 맡겼다. 블룸버그는 “값을 매기기 어려운 부실 자산이 있으면 래리 핑크 CEO에게 전화를 걸어라”고 보도했다.
바클레이스 M&A로 자산운용업의 판도를 바꾸다
블랙록의 성장 스토리는 2005년을 전후로 2막에 들어서게 된다. 창업 이후 독자적인 투자 철학과 기술을 통한 자생적 성장을 해 왔다면, 적극적인 M&A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1992년 블랙록으로 이름을 바꾸고 그 해의 운용 자산 규모는 170억 달러 수준이었다. 2년 후에는 530억 달러, 상장을 한 1999년 1650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래리 핑크는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하면서 성장을 독려했다. 이와 함께 2004년부터 M&A를 통해 회사의 외형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메트라이프의 자산운용부문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06년 자신보다 덩치가 큰 메릴린치의 자산운용부문을 인수하면서 세계 자산운용 업계 10위로 성장했다. 소매영업부문과 주식투자부문이 보강되면서, 채권 중심인 투자 자산의 균형을 이루었다. 블랙록은 2008년 기준 세계 3위까지 발돋움했다.
당시 세계 1위 자산운용사인 바클레이스글로벌인베스터스(BGI) 인수는 글로벌 금융 M&A의 명장면으로 기록된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복판인 2009년, 투자은행들이 휘청이는 틈을 타 영국계 금융 회사 바클레이스의 자산운용부문을 약 135억 달러에 인수한 것이다. 금융시장에서 다시 보기 힘든 이 세기의 딜을 통해 블랙록은 단번에 24개국에 직원을 둔 세계 최대 자산관리자가 됐다. 특히 BGI 인수로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을 주도하던 자회사 아이셰어즈(iShares)까지 인수하면서 ETF 시장의 절대 강자가 될 수 있었다. 아이셰어즈는 바클레이스의 보석과 같은 사업이었다. 블랙록은 아이셰어즈를 품에 넣으며 액티브 투자에서 패시브 투자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패시브 투자의 물결을 타고 가까운 경쟁사인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래리 핑크는 2019년 파이낸셜타임스와의 BGI 인수 10주년 인터뷰에서 “BGI는 회사 역사상 가장 큰 거래였다"며 "블랙록은 액티브 투자에 강한 반면 BGI는 패시브 투자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BGI 인수로 성장하는 ETF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블랙록은 이처럼 전문성을 기반으로 M&A를 통해 취약 부문을 보강하면서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로 급성장했다. 기관투자가 중심의 MBS 등 채권 운용 및 리스크 관리 시스템의 전문성과, 소매 및 ETF부문의 최고 자산운용사를 M&A하면서 종합자산운용사로 성장했다. 현재 블랙록은 다양한 공모펀드, ETF, 대체투자 상품 등 다양한 금융투자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수수료가 저렴한 ETF에 대한 수요 증가, 고령화로 인한 퇴직연금 시장 확대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2018년엔 미국 팔로알토에 첫 번째 AI 랩(Lab)을 설립해 인공지능을 통한 투자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블랙록의 빠른 성장을 ‘마케팅의 성공’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블랙록의 핵심 역량은 래리 핑크가 지닌 독창적 아이디어로 새로운 금융 및 투자 기법을 창안해 낸 데 있다. MBS와 자산유동화증권(ABS) 등 히트 상품을 출시하며 성장 스토리를 써 왔다. 또 스마트한 캠페인 역량도 돋보인다. 과거 블랙록이 AUM 3조 달러에서 5조 달러로 껑충 뛸 수 있었던 것은 채권 펀드에 대한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채권 시대를 연 데 있다. 그는 남보다 한발 앞서 시대정신을 선점하는 마케팅과 프로모션 전략으로 시장을 개척하는 데 천부적인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로의 변화도 환경활동가가 아닌 뼛속까지 금융인인 핑크 회장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과 화두를 잘 읽고, 철학이 담긴 메시지를 던지면서, ESG 투자의 패권을 쥐고자 한다.
블랙록의 창업자 8명 가운데 4명이 아직 ‘현직’인 점도 블랙록의 빠른 성장을 견인하는 힘이다. 블랙록의 투자 철학은 여전히 또렷히 흐르고 있다. M&A로 외형 확장을 해 왔지만, ‘하나의 블랙록(One Blackrock)’을 추구하면서 문화적 통합을 잘 이뤄낸 점도 블랙록의 강점으로 꼽힌다. 출신을 따지지 않고, M&A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일로(silo)를 허물었다. 이를 기반으로 변화와 혁신에 나서고 있다. 블랙록이 이끄는 ESG 투자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기대되는 것은 돈의 흐름을 간파해내는 핑크 회장이 읽어낸 변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가세하고 있다. 블랙록의 성장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주목된다.
박스 ? 래리 핑크는 누구인가?
래리 핑크 회장은 1952년생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구두 가게를 운영하는 아버지와 영어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공립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뒤, UCLA의 앤더슨경영대학원에 입학해 1976년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70년 로리와 결혼해 세 자녀를 두었다. 그중 장남인 조슈아는 핑크 회장이 소유한 헤지펀드사인 엔소캐피털의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첫 직장이 퍼스트 보스턴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이름을 날렸지만, 투자 실패로 회사를 나오면서 1988년 블랙록을 창업했다. 이후 빠른 성장으로 금융·자산 시장의 ‘글로벌 셀럽’이 됐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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