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발발한 지 71년이 되었다. 전쟁을 직접 겪은 분들이 세상을 많이 떠났지만 작품 속의 6·25전쟁은 그 시대의 아픔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성장소설을 써달라는 출판사의 요청으로 1995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낸 박완서 선생은 ‘변화의 속도가 하도 눈부시고 망각의 힘은 막강하여, 정말로 그런 모진 세월이 있었을까, 문득문득 내 기억력이 의심스러워지면서, 이런 일의 부질없음에 마음이 저려 오곤 했던 것도 쓰는 동안 힘들었던 일 중의 하나이다’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전쟁으로 회복불능 상태에 빠졌던 최빈국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기까지 수많은 분의 고통과 희생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싶었던 듯 작가는 ‘현재의 잘 사는 세상의 기초가 묻힌 부분이기도 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펼쳐 보인다’고 부연했다.
1992년에 발표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는 1931년에 태어나 19세 때 서울대학교에 입학하는 과정까지를 기록했다면 6·25전쟁 한복판에서 겪은 얘기는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고스란히 담았다.
소설 속에 ‘분하다 못해 생각할수록 억울한 것은 일사후퇴 때 대구나 부산으로 멀찌가니 피난 가서 정부가 환도할 때까지는 절대 안 움직일 태세로 자리 잡고 사는 이들은, 서울 쭉정이들이 북으로 남으로 끌려다닌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들의 피난살이 고생만 제일인 줄 알겠거니 싶은 거였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주인공과 오빠부부, 두 조카와 어머니는 총상을 입은 오빠 때문에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는 인민위원회에 끌려가 일한 것, 북한으로 가고 있었던 걸 숨기고 한강 이남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피난민 행세를 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던 중 나는 서울대에 입학한 지 일 년도 채 안 되는 동안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다는 걸 깨닫고 친구들을 떠올린다. ‘여고 동창생에 대해 궁금한 게 얼마나 예뻐졌을까, 연애는 해 봤을까 따위가 아니라 죽었을까 살았을까,라는 것은 환갑이나 지나고 나서야 할 짓이 아닌가’라고 읊조리면서 전쟁이 가져온 참혹한 현실을 개탄한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이제 국군 치하 향토방위대에서 일하며 오랜만에 한숨을 돌린다. 하지만 다시 피난명령이 떨어졌고, 이번에는 가족들과 함께 힘겨운 피난길에 나선다.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은 1951년 7월 10일 휴전협정을 시작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맺어졌다. 폐허를 딛고 선진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사람들이 전쟁의 한가운데서도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했는지, 의지만 있다면 제아무리 어려운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잘 보여준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체제가 바뀌면서 겪는 혼란이야말로 전쟁이 빚은 폭력이자 비극이다. 이 소설을 통해 끝나지 않은 6·25전쟁과 넘기 힘든 벽 앞에 선 인간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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