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남성들은 ‘맨박스(Man box)’로 인한 고통을 호소한다. 맨박스란 사회 운동가 토니 포터가 제시한 용어로, 우리말로 ‘남성다움’으로 해석된다. 가부장제하에서 남성에게 씌워지는 억압, 즉 사회가 ‘남성이 남성다울 것’을 강요하는 것을 뜻한다. ‘남자는 강해야 해’ ‘남자는 돈을 벌어야 해’ ‘남자는 울지 말아야 해’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 돼’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지만 20대 남성들은 맨박스에 동의하지 않는다. 2018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연령대가 낮을수록 강한 남자, 일에서 성공하는 남자 등 ‘전통적 남성성’에 대한 동의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의 생계 책임은 남자가 져야 한다’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20대(41.3%)가 50대(10.6%)보다 네 배 가까이 많았다.
문제는 맨박스가 젠더갈등의 원인으로 꼽힌다는 점이다. 산업구조 변화, 저성장으로 일자리는 줄어들고 여성의 사회 참여 증대로 구직 자체가 어려워졌다. 20대 남성들에게 동년배 여성들은 위협 요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교육에서는 성평등을 배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점도 남성들을 괴롭힌다. 5년차 남교사 A씨는 학교에서 “무거운 학습교구를 들어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는다. 그는 “학교에서의 내 역할이 ‘짐꾼’ 같다”며 “남자면 응당 힘이 좋지 않겠느냐는 고정관념 때문 아닌가”라고 하소연했다.
여성들도 성별 고정관념 때문에 고통받기는 마찬가지다.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가사·돌봄 업무는 여성들의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3년차 공기업 여사원인 B씨는 “회의시간마다 다과를 준비하라는 요청을 받는다”며 “같은 사원인데 남자 사원은 간식 주문과 같은 잡무를 시키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남성들이 성역할 규범에서 이득을 얻은 것도 있지만,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그런 이득이 사라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성역할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점이 교육에서 강조되고, 일이든 가사와 돌봄이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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