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에너지 공룡 기업들에 대한 기후책임소송이 과거 1950년대 담배 소송과 유사하게 흘러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CNBC는 25일(현지시간) 리스크 컨설팅 회사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의 최근 보고서를 인용해 “글로벌 정유사 로열더치셸이 기후소송에서 패소함에 따라 관련 소송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이같이 보도했다. 영국과 네덜란드의 합작사로 유럽 최대 기업인 로열더치셸은 지난달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대비 45% 줄이라”는 법원 명령을 받았다. 이는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에 대해 기후변화 책임을 묻는 첫 판결로 주목을 받았다.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 보고서에 따르면 석유, 가스, 석탄 등 전통적인 에너지발전 기업들이 현재 놓인 가장 큰 리스크는 기후책임소송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의 83%가 이들 기업의 화석연료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의 수석 환경기후변화 애널리스트인 엘리자베스 하이프스는 “셸 패소 판결이 이들 기업에 새로운 압력을 가하기 위한 선례로 사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0년 이후 글로벌 석유·가스 기업들에 대한 기후소송은 현재까지 2000건 이상으로 기록됐다. 올해에만 70건 이상으로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폭발적으로 급증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특히 이 소송의 90%는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이프스는 “셸 패소 이후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 인도 등에서도 이같은 소송이 접수되기 시작했다”며 “미국 외의 국가들에서는 접수 건수 중 60%나 실제 기소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기후소송 급증이 예상되면서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1950~1960년대 담배산업에 대한 줄소송을 연상시킨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이후 석유·가스 산업이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질타받기 시작했는데, 그보다 앞서 수십년 전에는 담배 제조기업들이 흡연과 폐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공격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담배소송은 계속 실패하다 2000년 이후가 되어서야 기업들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다. CNBC에 따르면 “미국 담배기업이 소비자들에게 흡연으로 인한 건강상 위험을 부정확하게 전달한 책임이 있다”는 2006년 판결이 시발점이었다.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의 프랑카 울프 유럽 애널리스트는 “기후소송과 담배소송의 유사점을 찾아내는 게 중요한 이유는 당시 판결로 어떤 모멘텀이 구축되면서 담배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