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는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강제적으로 국민에게 부과하는 금전이나 재물이다. 재정학 분야 석학인 리처드 머스그레이브는 다섯 가지 조세 원칙을 제시했다. 조세는 ①공평하고 ②시장경제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해야 하며 ③재정정책을 용이하게 실행할 수 있어야 하고 ④납세자가 쉽게 이해하고(명확성) ⑤징수비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등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이번 당론 결정 과정을 보면 이 원칙은 철저히 무시됐다.
진행 과정도 가관이다. 부동산특위는 5월 27일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공급·금융·세제 개선안을 발표했다. 발표 며칠 전까지 종부세 완화 기준을 놓고 ‘상위 2%’와 ‘12억원 상향’ 안이 팽팽히 맞섰다. 그러던 중 야당인 국민의힘이 5월 24일 종부세 부과 대상을 12억원으로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한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야당이 ‘12억원안’을 들고나온 시점부터 이 안은 논의 대상에서 아예 빠졌다”고 했다. 야당 안을 따라가는 모양새는 곤란하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특위안은 적잖은 논란을 낳고 있다. 조세 원칙에 반할 뿐 아니라 부수 목적인 부동산 시장 안정과도 거리가 먼 탓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방식”이란 비판이 잇따랐다. 상위 2% 안은 집값이 올라도, 내려도 내야 하는 ‘갈라치기 과세’란 점에서 공평성을 상실했다. 2% 공시가격은 수시로 바뀔 수 있어 명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세법률주의에도 위반된다. 양도세 개정안은 한 집에 오래 산 1주택자가 거꾸로 현행보다 세금을 더 낼 수 있는 기형적인 구조다. 머스그레이브도 한탄할 일이다. 민주당 의총에선 그들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2%건, 12억원이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김진표 특위 위원장은 “서울과 부산에서 100만 표를 잃으면 대선은 못 이긴다”는 ‘정치 공학’을 내세워 강경파를 설득했다.
홍 부총리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는 각별하다고 한다. 여당의 무리한 요구에 맞서 내심 기대하는 최소한의 방어선을 잘 지켜줘서다. 홍 부총리 교체설도 쑥 들어갔다. 이제는 민주당도 그를 좋아할 것 같다. 그러면서 세법은 ‘누더기’로 변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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