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록 한국에선 어떤 기업 투자했나...3년간 지분 변동 분석

입력 2021-07-12 06:01  

[한경ESG] 블랙록 ESG 혁명



글로벌 기관투자가의 빨라진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투자 시계는 한국 기업들에도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1위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주주 제안 표결에 참여한 한국 기업 수는 2019년 12개사에서 2020년 27개사로 2배 이상 늘었다. 블랙록은 뱅가드,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SSGA) 등 글로벌 3대 자산운용사 중에서도 한국 기업에 대한 ESG 관여가 가장 높은 편이다.

블랙록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로서 국내 기업들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018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의 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 개선안에 반대한 바 있으며, 지난해에는 한국전력공사에 해외 석탄발전소 투자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라는 서한을 발송했다. 또 LG화학의 인도 공장 가스누출 사건에 대해 개선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ESG 투자자’로서 블랙록은 최근 한국 시장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ESG를 본격화한 이후, 어떠한 한국 기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지분을 늘리고 줄이면서 리스크와 기회를 발견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한국 기업 ‘투자 포트폴리오’를 엿보다

한경 ESG는 기업 정보를 공시하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 다트(DART)에서 ‘블랙록펀드어드바이저스(BlackRock Fund Advisors)’로 최근 3년간의 공시 내용을 전수조사했다.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는 ‘5% 룰’에 따라 상장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거나 보유 비율이 1% 이상 변동된 경우 5일 이내 해당 내용을 보고하게 돼 있다.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블랙록펀드어드바이저스가 지분 변동 건으로 보고한 횟수는 총 62건이다. 그중 매수 지분 공시는 30건, 매도 지분 공시는 30건이다. 2건은 회사 분할, 분할 및 분할 합병에 따른 지분 공시다. 기업 수로 보면 총 32곳의 기업이 분석 대상이다.

시간 순으로 나열된 데이터에서 몇 가지 키워드에 따라 다시 기업을 들여다봤다. 첫째, 보유 비율 순으로 블랙록이 주요 주주인 곳이 어디인지를 봤다. 둘째, 보유 지분 증감을 통해 가장 많은 지분을 매수한 곳이 어디인지를 확인했다. 셋째, 보유 지분 증감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매도한 곳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또 이들 기업의 최근 ESG 활동을 짚어봤다.

그 결과 ESG 관점에서 뜨고 지는 분야가 있었다. 다만 이는 현시점에서의 블랙록의 정확한 보유 지분과는 차이가 있다. 현재 국내 기업의 주주로 있더라도 2018년 6월 이전에 공시한 경우 이번 조사에서는 파악할 수 없다. 또 최근 3년 사이에도 1% 미만 지분 변동이나 5% 이하로 지분이 하락한 이후의 지분 변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발행주식 수의 변동으로 지분율이 조정된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는 5% 룰 공시에 따라 블랙록이 투자한 한국 기업을 추정해 봤다는 의미가 있다.

이제 수익성이 나 홀로 성장을 이끌어 가는 시대는 지났다. 비재무적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경영 전략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때 ESG 금융은 기업들을 변화로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규제를 통한 ESG 경영 유도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반면 금융·투자 메커니즘을 활용하면 기업들의 자발적인 이행을 독려할 수있다. ESG에서 금융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하다. 블랙록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도 이러한 트렌드가 확인됐다.

블랙록의 한국 투자 기업 보유 지분율 상위 톱5에서 대세 업종은 금융으로 확인됐다. KB금융지주(6.02)와 신한금융지주(5.63%)가 이름을 올렸다. 블랙록은 두 기업의 2대 주주에 해당한다. 전자공시의 데이터로는 신한금융지주가 6.13%로 가장 높은 지분율로 나타나지만, 이후 신한금융지주가 증자를 하면서 최종 보유 비율은 5.63%로 떨어졌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ESG 경영을 본격화하면서 블랙록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는 그중 ESG 분야에서 ‘ESG 리딩 금융그룹’ 경쟁에 나서고 있다. 신한금융지주는 지난해 11월 동아시아 금융그룹 최초의 탄소중립 선언에 해당하는 ‘제로 카본 드라이브’를 선언했다. 2050년까지 신한금융이 투자하거나 대출해주는 자산의 탄소배출량을 ‘제로(0)’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다. KB금융지주는 국내 금융그룹 중 처음으로 지난해 3월 이사회 내 ESG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블랙록과 신한금융지주와의 인연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블랙록은 2016년 신한금융지주 주식 432만723주(5.13%)를 매입하며 3대 주주로 오른 뒤, BNP파리바, 싱가포르투자청(CIG) 등이 신한지주의 주식을 처분할 때마다 추가로 사들이며 2018년 2대 주주로 등극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2017년 취임 후 해외 기업설명회(IR)를 통해 글로벌 투자 업계의 큰손들을 만나고 신규 투자 확보에 공들여 왔으며 이 과정에서 블랙록의 ESG 이슈에 대한 높은 관심을 확인하고 일찍이 ESG 대응에 나서게 됐다. 블랙록은 2대 주주로서 2020년 조 회장의 연임에 손을 들어줬다.

KB금융지주는 블랙록의 투자 원칙에 적극적으로 발을 맞춰 가면서 ‘ESG 모범생’으로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블랙록은 KB금융지주 지분 공시를 한 2014년 이후 7년 만에 2021년 2월 보유지분을 2505만939주까지 늘렸다. 지분율이 5.01%에서 6.02%로 늘어나면서 국민연금 뒤를 이어 2대 주주가 됐다. 블랙록은 지난해 KB금융지주에 ESG 경영을 권고하는 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KB금융지주는 이에 화답하듯 ESG위원회 신설에 이어 국내외 석탄화력발전소 건설과 관련된 신규 프로젝트 파이낸싱·채권 인수 사업 참여를 전면 중단하는 ‘탈석탄’ 방침을 밝혔다.

블랙록이 5% 이상 보유한 종목은 총 11개다. (표 주석 참고) 보유 비율로 보면 엔씨소프트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블랙록은 3년 사이 엔씨소프트에 대해 총 7번의 지분 변동을 공시했다. 2018년 7월 지분율 5%를 넘긴 후 분기마다 지분을 늘리며 2019년 3월 8.12%까지 보유했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지분을 줄여 2020년 3월 기준 6.1%(전자공시는 6.0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블랙록은 엔씨소프트의 4대 주주에 해당한다.

게임 업계는 24시간 데이터센터 및 서버를 유지하면서 전력 사용과 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당하다. 국내 게임 업계는 아직 기업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시하고 있지 않고 있다. ESG 경영과 관련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다. 그중 엔씨소프트는 가장 먼저 ESG 전담조직을 구성하고 ESG 경영을 선언했다. 이러한 행보에는 블랙록의 영향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5% 이상 주요 주주인 블랙록은 2020년 엔씨소프트에 대해 주주 관여(engagement)를 한 바 있다.



블랙록이 5% 이상 ‘신규 보유’한 곳도 확인된다. 그 가운데 2021년 2월 카카오 주식 5.18%(459만6963주) 보유 공시가 눈길을 끈다. 블랙록은 2월 10일까지 카카오 지분 4.94%로 의무공시 대상이 아니었지만 지분이 5%를 넘겨 공시 대상이 됐다. 카카오는 2019년 이후 주식 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국내 대표 플랫폼주로서 본격적인 이익 구간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ESG 행보에도 적극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1월 12일 이사회 내 ESG 위원회를 신설하고, ESG 경영 현황과 성과를 담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공개할 예정이다. 또 저탄소 경제 전환을 위해 2023년 준공을 목표로 친환경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최근 3년간, 지분 변동은 없었지만 블랙록은 네이버의 2대 주주(5.03%)이기도 하다. 국내 양대 플랫폼 기업의 주요 주주로서 블랙록의 행보와, 데이터센터로 ‘전기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얻고 최근 사회(S) 리스크로 뭇매를 맞은 테크 기업이 어떻게 ESG 친화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할지 주목된다.

탄소 저감은 각 기업에 생존 문제가 되고 있다. 포스코는 ESG 경영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국내 대표 철강 기업인 포스코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블랙록은 2016년 10월 포스코 지분 5.06%를 보유했다고 공시하며 처음으로 지분율 5%를 넘겼다. 이후 포스코 지분을 추가로 샀다 팔았다를 반복하다가 2020년 5월 기준 기존 대비 1%를 줄여 5.23%를 유지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12월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한 바 있다. 기후변화 대응이 인류의 최대 도전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수소 500만 톤 생산체제를 구축하며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선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올해 3월 연임에 성공하며 2기 체제를 출범했다. 이를 두고, 포스코가 블랙록의 요구에 재빠르게 대응해 정기주주총회 이전에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연임에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업종도 블랙록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한 축이다. 삼성전자(5.07%), SK하이닉스(4.02%), LG디스플레이(4.00%), 실리콘웍스(3.80%) 등이 대표적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한국 산업 성장의 주축이지만 환경 측면에서 폐수 방류가 불가피하다. 공정 과정에서 하루 수십만 톤의 물을 쓰기 때문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ESG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블랙록은 2019년 1월 삼성전자 지분 5.03%를 보유한 이후 3대 주주로서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식 매입은 대부분 인덱스 펀드를 통해 이뤄지고, 장기 투자의 관점에서 운용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전자는 2020년 지속가능경영사무국을 신설하고 저전력 반도체를 포함해 친환경 반도체를 생산하기로 했다. 지난 6월 5일엔 반도체 업계 최초로 전 사업장에 트리플 스탠더드(triple standard) 인증을 받았다.

블랙록의 SK하이닉스 투자는 비중 확대 후 일부 차익 실현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업황이 좋았던 2018년 5월 SK하이닉스의 3대 주주(5.08%)에 올랐지만, 약 1년 반 만인 2019년 11월 다시 4.02%로 이하로 낮추며 공시의무에서 벗어났다. SK하이닉스는 최고경영자(CEO) 직속의 ESG경영위원회를 운영하고, 국내 대기업 중 처음으로 RE100(Renewable Energy 100%)에 가입하는 등 환경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LG디스플레이에 대해서는 201년 1월 5% 이상 보유 지분공시 보고서를 신규로 제출한 뒤, 4월 다시 1.01% 줄이면서 4.00%의 지분 보유를 공시했다.

삼성SDI 보유 지분 늘리고 DL·헬릭스미스 등은 지분 줄여

2020년 1월 초 래리 핑크 블랙록 CEO가 “기후 리스크는 투자 리스크”라며 ‘탈석탄 선언’을 본격화한 이후 보유 지분의 증감에서는 ‘친환경’ 키워드가 읽힌다. 2020년 1월 이후 매수 지분 공시 가운데 친환경 테마에 해당하는 기업은 삼성SDI와 두산퓨얼셀이 꼽힌다.

2020년 8월 블랙록은 삼성SDI 지분 5.01%를 보유하며 3대 주주로 올라섰다. 앞서 카카오와 같이 5% 이상 신규 보고 의무가 발생해 공시 대상이 됐다. 특히 당시 삼성SDI의 지분 매입은 2020년 이후 블랙록이 KT&G, 두산인프라코어, 포스코, 엔씨소프트, 금호석유화학, OCI, DB손해보험, 호텔신라, LG전자 등 보유 지분을 연이어 축소한 가운데 확대한 것이라 주목된다.

블랙록이 삼성SDI 주식을 매입한 것은 차세대 배터리 업종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보면서다. 리튬이온 배터리 분야의 대표주자인 삼성SDI는 국내 배터리 3사 가운데에서도 전체 사업에서 배터리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삼성SDI는 올해 들어 ESG 경영을 강화하면서 환경에 잠재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심해저 광물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두산퓨얼셀은 재생 및 그린 에너지 산업에 투자하는 블랙록의 아이셰어스 글로벌 클린 에너지 ETF(ICLN)에 편입돼 있는 국내 기업이다. 블랙록은 2020년 11월 두산퓨얼셀 5.12%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규 지분 공시를 냈다. 한 달여 후인 2021년 1월 추가로 1.06%를 매수해 6.18%로 확대하면서, 한때 블랙록이 보유한 가장 높은 지분율을 자랑했다. 이어 2021년 4월 다시 5% 이하로 내려가 4.55%를 보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글로벌 수소경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수소연료전지 강자인 두산퓨얼셀에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찜한 기업이 있는 반면, 손절한 기업도 있다. 헬릭스미스, DL 등이다. 지난해 3월 블랙록은 헬릭스미스 지분을 5.08% 보유했다고 밝히면서 2대 주주에 올랐다. 블랙록은 신약 임상 성공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던 무렵부터 주식을 사들였지만 지난해 8월 지분을 대부분 정리했다. 이후에도 매도는 계속된 것으로 보이지만 공시 대상이 아니어서 추가 공시는 나오지 않았다. 옛 대림산업인 DL에 대해서도 2019년 1월 5%의 지분을 보유하다가 2020년 12월 1.8%로 지분을 대폭 낮췄다. 석유화학 업종인 금호석유화학에 대해서도 5% 이하로 줄였다. 또 보험주인 현대해상, DB손해보험 지분도 일부 축소했다.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제조업 영역에서 탄소 배출 기업은 ‘기후 악당’의 오명을 쓰는 반면 차세대 기술이나 소재를 다루는 곳은 친환경 이미지를 얻게 된다. 그러나 ESG는 장기적인 투자이자 대전환이다. 블랙록은 한국의 성장을 주도해 온 주요 기업들이 ESG 친화적인 기업으로 변모하는 데 관심이 있다. 이와 함께 친환경 기술 개발 기업 발굴에도 공을 들인다. 블랙록이 투자한 한국 기업들은 흔히 생각하는 ‘이분법’의 논리와는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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