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 몸값이 8조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을 뜻하는 유니콘에 오른 게 3년 전인데, 어느덧 100억달러 이상을 의미하는 데카콘 진입을 노리고 있다. 서울 논현동 오피스텔에 책상 다섯 개 놓고 일하는 풋풋한 청년 스타트업으로 한국경제신문에 처음 소개된 게 2014년 10월이었다. 지금은 1000명 넘는 직원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해 역삼역 일대에 뿔뿔이 흩어져 일하고 있다. 증권사, 전자결제(PG)회사, 보험판매회사에 이어 아무나 받기 힘든 은행 사업권도 따냈다. 이승건 대표가 꿈꿨다는 이른바 ‘디지털 금융지주’의 그림이 완성돼가고 있다.
이렇게 초고속으로 크는 회사에 견제가 안 들어올 수 없다. 금융부 기자들은 토스에 대한 ‘뒷담화’를 심심찮게 듣게 된다. 대형 금융사는 자신들의 위상을 금융상품 납품업체로 떨어뜨리고 있는 플랫폼 기업에 유감이 많다. ‘금융도 잘 모르면서’ ‘어디까지 잘되겠냐’ ‘결국 네이버·카카오에 밀리지 않겠어’ 같은 류의 관전평이다. 직원으로 토스를 거쳐간 이들이 조직문화에 대해 말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몰입해 일하는, 나쁘게 말하면 사람 갈아넣는 회사라는 양극단 평가가 있다.
그래도 사업 수완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다. 5~6년 전 토스와 동급이었던 수많은 핀테크 스타트업을 떠올려보면 답이 나온다. 어찌됐든 규제 완화의 혜택을 오롯이 누리며 커온 토스는 이제 제도권 금융의 한복판으로 들어왔다. 리스크 관리 역량과 수익 창출 능력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토스가 최근 투자 유치 과정에서 평가받은 기업가치는 74억달러, 우리 돈으로 8조3000억원이다. 우리금융 시가총액(8조6000억원)에 맞먹는다. 몸값이 과대평가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지만, 진실은 언젠가 증시에서 숫자로 확인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토스가 보란듯이 성공하길 바란다. 기업가치가 하나금융(14조원) 신한금융(21조원) KB금융(23조원)을 뛰어넘었다는 뉴스도 기대해본다. 이유는 그냥 하나다. 금융 생태계에 화끈한 ‘충격요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안정적 과점 체제 속에서 금융권 풍경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인사 때마다 어느 은행 출신인지 나누고, 관료 출신 낙하산은 곳곳에 착착 꽂힌다. 2021년 은행원 유니폼을 폐지한 게 ‘조직문화 혁신’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인력이 남아돌아도 어쩌질 못한다. 은행들은 당국 규제 탓, 노조 등쌀 탓이라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방패 삼아 오붓하게 지내는 것 같다”고 느끼는 외부인도 많다는 걸 아는지 모르겠다.
토스의 조직문화는 스타트업 특유의 속도전과 실리콘밸리식 무한경쟁이 결합돼 있다. 이 회사는 업무량이 많고 버티기 힘들다는 세간의 평가를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솔직하게 얘기한다. “워라밸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일에 몰입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세상을 바꿀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느냐.” 연봉과 복지는 최고 대우를 해주되 철저한 성과주의로 간다는 것이다. 토스가 성공한다면 KT의 케이뱅크, 카카오의 카카오뱅크 등의 성공과는 또 다른 얘기다. ‘금융을 잘 몰랐던 스타트업’이 금융의 판을 더 흔들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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