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제 앵글 선반을 조립하기 위해선 볼트와 너트가 필수다. 민병오 회장이 창업한 스피드랙(옛 영진산업)은 일찌감치 볼트 없이 조립할 수 있는 앵글 선반을 개발한 가구회사다. 주된 수요층이던 설비업체들이 기존 방식에 익숙한 나머지 볼트 없는 선반을 외면하면서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제품을 내놓은 2012년 매출은 44억원으로 전년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속 성장한 덕분에 2020년 매출은 369억원으로 8년 만에 여덟 배 증가했다. 올해 목표는 500억원으로 잡았다. 목표 시장을 산업용에서 가정용으로 바꾼 게 비결이다. 스피드랙의 제품은 베란다 수납장, 드레스룸 옷장, TV 하부 선반장, 책장 등으로 사용된다. 2013년 가업을 물려받으며 이런 변화를 주도한 2세 민효기 대표는 “조립과 이동이 편리하다는 장점을 앞세워 온라인 판매에 집중한 게 주효했다”며 “한국의 이케아로 성장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민 대표는 8년 전 우연한 기회에 가정용 시장의 성장성을 간파했다. 당시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산업전시회에 제품을 출품한 게 계기였다. 공구상 등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회였지만 인근에 거주하는 가정주부들이 제품을 보고 연이어 주문했다. 그는 “주부들이 스피드랙 제품을 보고 ‘베란다에 두고 쓰면 좋겠다’며 경쟁적으로 주문했다”며 “가정용 시장에서 돌파구를 찾았다”고 돌아봤다.
목표 시장을 산업용에서 가정용으로 바꾼 뒤에는 마케팅에 집중했다. 온라인 쇼핑을 확대하고 홈쇼핑 방송도 본격화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민 대표는 “홈쇼핑 1시간 방송에 주문이 1000건을 넘기는 등 생산 현장에 과부하가 걸릴 정도로 주문이 넘쳤다”며 “주문서 출력에만 A4 용지 한 박스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단기간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선택할 수 있는 선반 길이와 폭 종류가 150여 가지에 달해 제품을 잘못 포장하는 사례가 생긴 게 대표적이다. 그는 “고민 끝에 스마트팩토리에서 답을 찾고 삼성SDS와 협업해 자동화(RPA) 시스템을 도입했다”며 “온라인으로 들어온 주문서를 자동으로 생산시설과 물류창고로 전달하도록 해 업무 효율성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제품 길이를 자동으로 인식해 페인트를 필요한 만큼만 분사하는 시스템도 도입했다. 디지털 물류시스템(DPS)을 통해 포장 진행 상황도 실시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업무 효율성이 좋아지면서 직원들의 근무 만족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그는 “요즘 젊은 직원들은 단순 반복 작업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며 “자동화율을 높인 후 창의적인 업무에 재배치됨에 따라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30% 넘던 이직률이 5% 밑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스피드랙은 올해 들어 수출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미국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 입점하면서 수출 길을 본격 열기 시작했다. 북미 지역 외에 유럽과 일본 등 세계 20개국으로 판매 지역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민 대표는 “소비자 리뷰 텍스트를 분석하는 등 매일 쌓이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비자들이 더 좋아할 만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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