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은 2015년 1월 t당 8640원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2019년 12월 23일엔 4만9000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작년 4월에도 4만원대를 유지했다. 올 들어선 가격이 2만원 아래로 떨어졌다. 가격 하락의 이유는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 경제활동이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생산량이 줄었고, 기업들의 탄소배출량도 덩달아 감소했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윤영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들의 탄소배출량은 배출 할당량보다 처음으로 더 적었다. 탄소할당량을 초과하지 않은 기업들이 늘면서 탄소배출권을 사들이려는 수요도 줄었다. 이달 2차 계획기간(2018~2020년)이 종료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탄소배출권 KAU20년물이 다음달부터 시장에서 거래가 제한돼 이를 소화하려는 물량이 미리 시장에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최근 가격이 급락한 것은 정부의 어설픈 정책 때문이라는 게 시장 참가자들의 분석이다. 환경부는 당초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경매를 6월까지 실시하지 않겠다고 했다. 유상할당이란 기업으로 하여금 탄소배출 할당량 중 일부를 정부로부터 경매를 통해 유상 구매토록 하는 것을 말한다. 유상할당을 시행하면 시장에서 배출권 수요가 줄어든다.
환경부는 하지만 갑자기 말을 바꿔 6월 18일 550만6600t의 유상할당 입찰공고를 냈다. 기업 관계자들은 “환경부의 갑작스러운 변경이 가뜩이나 줄어든 배출권 거래 시장의 수요를 마르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6월 22일 탄소배출권을 거래하는 일부 기업들은 환경부 관계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가격이 크게 떨어졌을 때 탄소배출권을 사보면 어떻겠느냐”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기업 관계자들은 이를 사실상의 ‘구두 개입’으로 받아들였다. 일부 기업들이 매수 주문을 내자 탄소배출권 가격은 빠른 속도로 회복돼 29일 t당 1만6000원을 돌파했다. 기업 관계자들은 “정부가 가격이 1만원 아래로 떨어질 경우 배출권 시장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것을 우려한 것 같다”고 풀이했다.
시장 참가자들은 정부가 가격이 오르내릴 때마다 개입에 나설 것이 아니라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 수요기업이 아니더라도 탄소배출권을 사고팔 수 있는 시장조성자들의 참여를 더 늘리는 게 하나의 대안이다. 현재는 산업은행 등 일부 금융사들만 시장조성자 역할을 맡고 있다.
환경부는 “가격을 올리기 위해 매수 주문을 종용한 적이 없다”고 했다. 탄소배출권이 많은 업체와 부족한 업체에 대한 상시 현황 파악을 하고 있을 뿐이란 해명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정기적으로 간담회를 열어서 탄소배출권 제도를 설명하고 가격에 대해 논의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 탄소배출권은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등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 정부는 매년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정한 뒤 배출권을 발행해 기업에 할당한다.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기업은 배출권을 팔고 많이 배출하는 기업은 사게 된다. 한국에선 이 같은 거래가 2015년부터 한국거래소 시장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지훈/김소현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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