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 외국 운전면허증 맡겨야 한다는 낡은 법 [특파원 칼럼]

입력 2021-06-29 07:31   수정 2021-06-29 07:36

미국 최대 상업·금융도시 뉴욕에 있는 한국총영사관은 수년간 인근 뉴저지주의 교통당국과 긴밀한 협의를 벌여왔다. 운전면허 상호 인정에 관한 약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다.

양국 주재원이나 학생들이 자국 운전면허증을 상대 국가에 제시하면 현지 면허증으로 교환해 주자는 게 골자다.

뉴저지 출신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보다 이곳에 체류하는 한국인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한국인 혜택이 훨씬 큰 제도다. 뉴욕 및 뉴저지에 거주하는 주재원 및 동포는 50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합의 직전까지 갔던 양쪽 협의는 막판 난관에 봉착했다. 1961년 제정된 한국의 도로교통법이 발목을 잡았다. 이 법 제84조(운전면허 시험의 면제) 3항을 보면 ‘도로교통공단은 (상호 협약에 따라 외국인의) 운전면허 시험을 면제할 경우 그 사람의 외국 면허증을 회수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예컨대 외국인이 상호 협약에 따라 한국 내 면허증을 받기 위해선 자신의 자국 면허증을 유효기간 내내 한국 경찰서 등에 맡겨놔야 한다는 의미다.

외국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규정이다. 분실 우려는 차치하고 일시 귀국 때마다 자국 면허증을 되찾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서다. 무엇보다 이 규정을 유지하는 데 따른 편익을 찾기 어렵다.

미시간 워싱턴 앨라배마 등 미국 내 23개 주(州)가 한국과 운전면허 상호 인정 협약을 맺고 있지만 뉴저지와 같이 엄격한 상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곳에선 협상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미국에선 외국인의 면허증을 회수해 최장 수년 동안 자기 책임 아래 보관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뉴욕주재 한국총영사관 관계자는 “뉴욕과 뉴저지에 장기 체류하는 상사 주재원과 가족 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운전면허 상호 인정 협정은 주요 현안”이라며 “한국의 도로교통법을 현지 당국에 이해시키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도로교통법은 수차례 개정을 거듭해왔다. 지난달엔 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 장치의 진화에 맞춰 새 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하지만 수십년 전 만든 ‘외국 면허증 회수·보관’과 같은 낡은 법 조항은 바뀌지 않았고,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게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알고 보면 불필요할 뿐더러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이런 생활 속 ‘깨알 규제’는 더 많을 것이다. 낡은 법조문들이 현실에 맞게 개정되길 기대한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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