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는 어느 한 단면으로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정도의 차이가 있는 스펙트럼이다. 잘 구현될 때의 순기능도 있고 과도하게 적용될 때의 역기능도 있다. 현실에서는 능력주의가 옳다 그르다 싸우는 소모적 논쟁보다 어떻게 역기능을 최소화하면서 순기능을 극대화해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생산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
능력주의는 귀족주의, 학벌주의, 권위주의, 연공서열주의, 진영논리보다 진보적이다. 능력주의 반대론자조차 능력주의가 과도하게 혹은 왜곡되게 적용될 경우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하자는 것일 뿐, 근본적으로 능력을 인정하는 체제 자체를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결국 현 논쟁은 능력주의라는 기본 이데올로기 내에서 그 순기능을 극대화하고 역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논쟁인 셈이다. 이를 위해 교육에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우선, 복지 정책과 교육 정책은 구분하자. 상당수의 교육 공약, 교육 정책에 사실상 ‘교육’이 없다. 무상급식,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등은 교육 정책이 아니라 복지 정책이다. 교육 정책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국민이 ‘무슨 능력’을 ‘어떻게 기를지’에 대한 내용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정부의 거대 예산이 들어가는 교육 정책은 무상급식, 무상교육, 시설개선, 반값등록금 등에 집중됐다.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교육의 질적 변화와 관련해서는 예산도, 정책도 제대로 없었다.
교육에서 능력주의가 왜곡되지 않게 순기능을 구현하려면 ‘무엇을 ‘능력’으로 볼 것인지’ 즉, ‘평가 기준’이 관건이다. 능력주의가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납득할 수 있는 게임의 룰(평가의 타당성)과 수긍할 수 있는 채점 시스템(평가의 신뢰성)이 필수다. 예컨대 대입 수능의 평가 기준이 타당하다면 대학도, 학교 교사도, 학생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 수능은 대학도, 교사도 납득하지 못한다. 서울대 재학생의 입학 전형별 누적 학점을 보면, 학생부종합전형 출신이 가장 높고, 수능 출신이 가장 낮다. 게다가 수능 정시가 다른 전형보다 강남 출신 비율이 훨씬 높다. 수능이 공정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 타당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수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교육과정이 목표하는 능력과 전혀 다른 능력을 측정하고 있다. 수능의 가장 큰 문제는 암기를 측정해서가 아니라 정해진 정답 맞히기만 고득점으로 보상해 주면서 ‘내 생각, 내 논리’를 기를 기회를 말살하는 것이다.
수능도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논술형 문항으로 타당성을 확보하고 교차채점 시스템으로 평가의 신뢰성을 구축하면 충분히 공정할 수 있다. 정당의 대변인 선발 때 토론 배틀이 아니라 토익 점수순으로 뽑는다면 대변인 직무와 토익이 무슨 상관이냐며 타당성이 없다고 반발이 빗발쳤을 것이다. 평가의 타당성은 목표 능력을 측정해야 구현된다. 채점의 신뢰성도 필수다. 선다형 객관식이 아니라 정성평가라도 게임의 룰이 타당하고 교차채점으로 채점자 간 상호 주관성을 집단 지성으로 객관화하면 채점의 신뢰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타당성과 신뢰성이 동시에 확보돼야 공정이 구현된다.
교육 정책에서는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돼선 안 된다. 다수의 중간층을 위해 잘하는 아이를 하향 평준화하는 것도, 뒤처지는 아이를 포기하는 것도 비교육적이다. 모두가 자신의 분야에서 최대치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공교육에서 능력주의는 능력이 없는 자를 패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각기 다른 종류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고 그걸 발굴하고 키워주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 가지 정답 찾기가 아니라 지식에 기반한 각자의 비판적 창의적 논리 사고력이 ‘능력’으로 평가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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