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교육과정에 집어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습니다. 대학입시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AI·소프트웨어(SW) 교육이 형식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수능을 자격시험화하고,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성을 늘리는 방법까지도 고려해야 합니다.”(오세정 서울대 총장)
“AI와 프로그래밍언어 교육을 ‘영어 교육’에 빗대고 싶습니다. 100년 전 서양인의 사고방식을 영어로 배웠듯, 이젠 AI의 사고방식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이 제대로 안 된다면 후손들은 외국 기업들이 개발한 AI의 지배를 받고 살 것입니다.”(이광형 KAIST 총장)
‘컴퓨터 교육의 대학입시 반영’ ‘초·중·고교 AI교육 의무화’. 국내 두 주요 대학 수장들이 제시한 ‘미래를 위한 정보화 교육의 키워드’들이다. 한국공학한림원과 AI미래포럼은 30일 국내 주요 대학 총장과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해 ‘SW/AI 교육 긴급 특별포럼’을 열었다. 서울대와 KAIST 총장이 AI·SW 교육 대담 현장에 함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22 교육과정 개편, 한국의 미래를 좌우한다’를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은 두 대학 총장을 포함해 박형주 2022교육과정개정추진위원장(아주대 총장), 김한일 한국컴퓨터교육학회장(제주대 교수), 정웅열 한국정보교사연합회장(백신중 교사) 등 10여 명의 전문가가 참석했다.
해법은 ‘애자일식 개편’이다. 부처·기관 간 경계를 허물고, 몸집을 줄여 과목별 구분 개편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오 총장은 “10년 뒤, 15년 뒤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우리나라 교육과정 개편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려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교육부가 나라 전체 체제를 이끄는 현재 논의 방식을 포기해야 하며, 지자체·교육청·학교 단위의 자율적인 AI·SW 교육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학들이 공동으로 입시과목 반영에 보조를 맞춘다면 효과가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광형 총장은 빈약한 AI교육이 궁극적으로 외국 기술에 대한 종속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는 “지금도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개발해놓은 시스템에 종속돼 있어 컴퓨터에서 한글 표기법조차 주체적으로 바꾸지 못한다”고 했다. “과거 영어 과목이 그랬듯, 미래 사회에서 성과를 인정받는 사람은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며 “이번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자손들이 AI를 지배하고 사는 ‘AI자주독립국가’가 되도록 선진국 수준의 정보 교육량을 갖춰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고등학교의 정보과목 분류 체계도 문제라고 했다. 김 교수는 “정보과목은 현재 생활교양영역 기술가정교과군에 소속돼 있다”며 “교과군을 독립시키지 않으면 누가 어떻게 가르치는지 파악도 어렵고, 고교학점제 도입 과정에서 학생들의 시야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가 개편과정에 모두 반영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22교육과정개정추진위원장인 박형주 아주대 총장은 “디지털 대변화 시기에 앞서 SW 교육이 강화돼야 함에 공감한다”면서도 “개정에 관한 외부적 요인이 간단치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시민단체 등에서 초·중·고교 전체 시수를 줄여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으며, 일선 지방교육청이 재량권을 일부 이전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고 밝혔다. “공통과목의 시수를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워진 상황이라 정보교과를 공통과목처럼 취급하는 논의는 난관이 예상된다”고 했다. 박 총장은 “물리 수학 사회 등에서 AI 융합교육을 신설하고 과학교사와 정보교사가 해당 과목을 반씩 담당하는 것도 단기적 해결책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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