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ESG(환경·사회·지배구조)로 촉발된 기업 가치와 투자 기준의 변화로 인해 환경 경영이 주목받고 있다. 1995년부터 환경 경영 분야에서 일해 온 필자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느낀다.
사실 환경 경영이 주목받던 시기가 과거에 두 차례 있었다. 1996년 ISO 14001이라 불리는 환경 경영 시스템 국제표준이 제정돼 발표됐다. 이 국제표준은 환경 개선을 통한 발전의 기대감과 무역에서의 요구로 인해 대기업과 환경 부하가 큰 업종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그런데 확산의 방향이 문제였다. 인증 제도이다 보니 빨리 인증을 받는 것이 목표가 되고, 빨리 받으려다 보니 직접적인 환경 업무를 넘어서는 분야는 제대로 개선하지 못하는 상황이 다반사였다.
환경 업무만 다루는 것은 환경 경영이 아니다. 기존의 환경 관리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환경 관리의 수준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환경 관리는 성장 전략이 아니다. 그나마도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적지 않은 기업들에서는 인증서라는 형식만 남게 됐다.
두 번째로 찾아온 시기는 2008년 등장한 녹색성장과 관련된다. 녹색성장은 국제적 흐름인 ISO 14001과는 달리 기후변화 대응을 통한 경제 발전 정책이어서 내심 기대했으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녹색성장이 에너지와 기후변화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환경 이슈의 유기적인 관계를 조율하지 못했고 기업의 체질 개선까지 연결되는 데 한계를 나타냈다.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이야기한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기대가 더 크다. ESG가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발전 단계에 들어선 개념이고 기업의 가치를 판단하는 금융 분야에서 다루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새로운 물결처럼 조금은 호들갑스러운 점도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2006년 유엔의 책임투자원칙(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 PRI)을 필두로 양적·질적으로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이 기대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려면 과거의 부족했던 경험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환경 경영 분야에서 25년간 일해 오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점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환경을 경영으로 연결시키지 못한 것이다.
자동차부품 회사에서 컨설팅을 할 때 일이다. 폐수처리장의 부하가 커서 증설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증설하려면 부지와 비용 투자가 필요하다 보니 진행이 더디었다. 그래서 폐수 부하를 줄일 수 있는 방향을 찾아보기 위해 부하의 원인을 분석해보니 도장 공정에서 낭비되는 도료가 주요 원인으로 손실 비율도 심각했다.
폐수처리장 증설 논의를 도장 공정 개선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당연히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의논조차 하지 못했다. 폐수처리장 건은 환경부서가 중심이 돼 추진하면 되지만 공정 개선은 여러 부서의 의견이 조율돼야 하고 환경 문제로 시작된 일이 생산부서로 번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도 보게 됐다. 만일 공정이 개선됐다면 경영 측면에서 좋은 성과를 냈을 것이다.
지금은 플라스틱 포장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 과거에도 환경 경영을 컨설팅하는 입장에서 포장은 상품 보호와 마케팅이라는 본래의 기능만 할 수 있으면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자원을 절약하고 비용도 절감하며 폐기물을 줄이는 1석3조의 효과를 내는 핵심적인 항목이었다.
그래서 한 제약 회사에서 포장에서 비닐 코팅을 제거하는 과제를 제안했는데 판매 부서의 반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단순히 비닐 코팅을 제거하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재료 비용, 공정 비용, 불량 비율 등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낼 것으로 분석됐으며, 해외 선진 기업들은 이미 적용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앞의 두 사례 모두 환경 이슈를 경영 수준으로 확대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됐을까. 여러 부서의 의논이 필요한 상황에서 환경은 그저 환경이라고 폄하되고 융합적인 방향을 판단해야 할 최고경영자(CEO)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이 개인적 경험은 과거 두 차례 환경 경영이 주목받던 기회가 혁신으로 발전되지 못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아마 적지 않은 국내 기업들이 유사한 상황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반면 환경을 경영으로 발전시켜 체질 개선과 경영 혁신을 이룩한 사례를 해외에서는 종종 발견할 수 있다. 1963년 설립된 북유럽 호텔 체인인 스칸딕(Scandic) 호텔은 1990년 재정이 악화돼 1992년 롤랜드 닐슨 사장이 부임하게 됐다. 신임 사장은 친환경 경영을 선언하고 24만 달러를 투자해 에너지 사용량 24%, 물 소비량 12%, 폐기물 45%를 감소시켜 5년 동안 투자액의 10배에 달하는 240만여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고 회사 이미지를 개선했다. 이 과정에서 1994년 이 호텔은 흑자로 전환됐으며 현재까지 친환경 이미지를 유지하며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환경 개선을 통한 비용 절감의 대명사는 포스트잇으로 유명한 3M이다. 3M은 1975년 오염을 예방하면 비용이 절감된다는 PPP(Pollution Prevention Pays)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2010년 35주년을 맞아 진 스베니 환경안전보건 부사장은 제품 및 제조 공정 개선을 통해 그간 20억 파운드의 오염 물질을 줄여 14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했으며 PPP 프로그램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밝힌 바 있다.
친환경 제품과 브랜드 이미지를 통해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하는 기업으로 아웃도어 업체인 파타고니아(Patagonia)와 화장품 업체인 러쉬(LUSH)를 꼽을 수 있다. 두 회사의 공통점은 창업자들이 환경적으로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설립해 환경 혁신과 시장 경쟁력을 동시에 성취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선진 기업들은 CEO들이 확실하게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혁신을 지휘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그린 비즈니스 전략인 제너럴일렉트릭(GE)의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도 당시 CEO였던 제프리 이멜트의 사업 전략에서 출범한 것이었다.
해외 선진 기업 공통점은 CEO의 관심과 이해
이번 기회에 국내 기업들도 환경 경영의 혁신 사례에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번 ESG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필자의 경험상 흉내만 내면 수준이 드러난다. 환경만 집중하다 경영으로 못 가면 환경 관리 수준을 답보하는 것이며, 환경을 적당히 언급하면서 경영으로만 가면 워싱이 된다. 자칫하면 환경은 개선되지 않고 환경을 기반으로 하는 경영 성과도 얻지 못할 수 있다. 에너지 절감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과 성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회사에서 실제 에너지 사용량이 증가하기도 하고, 환경 사고 예방을 위한 조직과 체계를 갖추었다는 회사에서 반복적인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 시리즈를 쓰는 목적은 기업들이 환경을 통해 실질적인 혁신과 그 결과에 의한 기업 가치 제고를 이루어낼 수 있도록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는 데 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에서 강조한 CEO의 올바른 관심이다. 관심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명확해질 수 있다. 기업이 환경 경영에 대한 자신의 위치를 알아보는 간단한 방법을 제시한다. 다음의 설문에서 10점 만점에서 7점 이상이면 우수, 4점에서 7점 미만은 보통, 3점 이하는 미흡한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음에는 환경 경영의 기반을 닦는 리스크와 기회 분석에 대해 다룬다.
양인목 성신여대 청정융합에너지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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