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피라미드를 바라보면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저마다 생각하는 바는 다를 수 있지만 ‘강제노동’을 연상하는 것이 일반적일 듯싶다. 100년 남짓한 기간 2500만t에 이르는 엄청난 돌을 사람의 힘으로 옮겨 만든 피라미드야말로 노예의 고통을 표현하는 데 있어 최상의 상징물일 것이다. 칼 A 비트포겔도 피라미드를 “최소의 아이디어로 최대의 자재를 허비한 전제주의적 기념물”이라고 표현했다.
2010년 이집트 고유물최고위원회는 제4왕조(기원전 2575~2467년)시대로 추정되는 대피라미드를 건설한 노동자의 묘지군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파라오 무덤 옆에 노동자 묘지가 발굴된 것은 피라미드 건설자가 노예가 아니었다는 증거라는 설명이다. 또 약 1만 명의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가 이집트 곳곳의 농가에서 제공한 소 21마리와 양 23마리를 매일 먹었다는 증거도 발굴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들 노동자는 3개월마다 교대됐다는 점도 밝혀졌다.
비록 피라미드가 지어진 시기보다 후대이긴 하지만 이집트 노동자에게 행해진 좀 더 구체적인 대가에 관한 기록도 남아 있다. 중왕국 시대 세소스트리스 1세 때 스핑크스를 건립할 석재 덩어리를 채석하는 원정대에겐 직급별로 배분되는 빵과 맥주의 상세한 배분 기록이 있다. 인솔자와 장교, 석재 조각공 인솔자, 채석장인, 사냥꾼, 수공업자 및 기타 직군별로 자세히 기록을 남겼다. 인솔자 1명이 빵 200개에 맥주 5단위를 받았고 석재조각공 20명이 각각 빵 30개에 맥주 1단위, 채석장인 1명이 빵 15개에 맥주 60분의 47단위 식으로 배급받았다. 석재조각공 100명, 채석공 100명, 선원 200명, 새잡이 60명, 제화공 60명, 부역에 징발된 노동자 1만7000명, 술 빚는 사람 20명, 곡식 빻는 사람 20명, 정육 관계자 20명, 심부름꾼 50명 등 노동자 1만8630명에게는 각 빵 10개에 맥주 3분의 1단위가 공급됐다.
또 데이르 엘 메디네의 노동자 유적을 살펴보면 동굴 작업에 필요한 램프가 보통 반나절용으로 공급됐다는 게 확인된다. 이를 통해 무덤 건설에 동원된 노동자는 하루 8시간씩 작업하고 낮 12시에는 점심식사를 위해 휴식시간이 끼어 있는 하루 10시간 리듬으로 작업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당시 서기가 기록한 결석자 명단을 보면 노동자가 작업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점도 살펴볼 수 있다. 서기의 주요 임무는 곡물 분배 형태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소맥의 일종인 에머밀이나 맥주 원료인 보리 등이 임금의 주류를 이뤘다. 예를 들어 십장은 하루 다섯 자루 반의 에머밀과 보리 두 자루를 받고, 성문지기는 다섯 자루의 에머밀과 두 자루의 보리를 지급받는 식이었다. 일반 노동자는 네 자루의 에머밀과 한 자루 반의 보리를 배급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15~18세기 초 유럽의 빵 배급에 비해서도 넉넉한 양이었을 정도로 대우를 잘 받았다. 이 밖에 기름과 야채, 과일, 생선, 연료 따위도 지급됐고 소금, 모피, 육류도 드물지만 배급 목록에 끼었다. 육류는 여러 명의 노동자에게 소 한 마리가 배당돼 각자가 소의 가운데 배당분을 지니는 형식으로 나눠졌다.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② 노예노동이 임금노동자보다 생산성이 낮고 전문적인 기술도 축적하기 어려운 이유는 왜일까.
③ 절대왕조 시대에도 노동자가 파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