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철수 쌤의 국어 지문 읽기] 꾸밈을 받는 말의 속성을 드러내는 꾸미는 말에 이미지가 있다

입력 2021-07-05 09:00   수정 2021-07-05 23:57


플라스틱 물… 무쇠 낫… 호미… 똥덩이
시는 시어의 이미지를 환기하며(불러일으키며, 떠올리며) 읽어야 한다. 이미지를 환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A는/ㄴ B’라는 문장 구조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A는/ㄴ B’라는 문장 구조에서 A를 꾸미는 말(수식언), B를 꾸밈을 받는 말(피수식언)이라고 한다. 꾸미는 말과 꾸밈을 받는 말 사이에는 여러 관계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꾸미는 말이 꾸밈을 받는 말의 속성(성질)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새빨간 맛있는 사과’에서 ‘새빨간 맛있는’이라는 꾸미는 말은 ‘사과’라는 꾸밈을 받는 말의 속성인 것이다.

이 작품에서 ‘플라스틱 물건’이라는 시어가 쓰였다. 이 시어의 이미지는 ‘제 손으로 만들지 않’으며, ‘한꺼번에 싸게 사’고, ‘마구 쓰’는 것이면서, ‘망가지면 내다 버’릴 수 있다는 속성에서 환기할 수 있다. 즉 ‘플라스틱 물건’은 보잘것없는 것, 가치가 없는 것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호미’의 이미지도 떠올려 보면, 그것은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것이며, ‘꼬부랑’한 것이니 ‘플라스틱 물건’과는 반대로 가치 있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환기된다. ‘똥덩이’의 이미지는 ‘직지사 해우소(解憂所·절에서 ‘변소’를 달리 이르는 말)’에 있고, ‘아득한 나락(죄업을 짓고 매우 심한 괴로움에 놓인 세계)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므로, ‘플라스틱 물건’처럼 가치 없고 추락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한편 ‘무쇠 낫’을 꾸미는 말은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숫돌에 갈아’ 다음에 ‘만든’을 보충해 읽어 보자. 그러면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시우쇠처럼 … 달구고/모루 위에서 벼리고/숫돌에 갈아 (만든)/시퍼런’은 ‘무쇠 낫’을 꾸미는 말이므로, 그 이미지는 강하면서도 가치 있다는 이미지를 갖게 되어, ‘플라스틱 물건’과 대조를 이룬다.

이와 같이 꾸밈을 받는 말의 속성을 밝혀주는 꾸미는 말을 음미하면서 시어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훈련을 많이 하도록 하자.
한꺼번에… 마구… 당장… 하나씩… 온통… 문득
‘고등학생이니?’와 ‘벌써 고등학생이니?’를 비교해 보자. ‘벌써’의 사전적 의미는 ‘예상보다 빠르게’이다. 어휘를 대할 때 뜻만 생각지 말고 어감도 느껴 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를 고려하면 ‘벌써’를 씀으로써 상대방이 고등학생이 된 사실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놀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부사어에 신경을 쓰면 뜻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플라스틱 물건’은 그 수가 많고, ‘호미’는 유일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대조적인 의미를 지닌 부사어 ‘한꺼번에’와 ‘하나씩’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호미’를 통해 개별적인 존재의 고유성이 부각되고 있다. ‘마구’는 ‘플라스틱 물건’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당장’은 당면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절박감을 강조한다. ‘온통’은 화자의 성찰적 시선이 자신의 삶 전반에 걸쳐 있음을 부각한다. 즉 부끄러움의 정도가 매우 크고 광범위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문득’은 깨달음의 상황을 부각하기 위한 부사어라 할 수 있다. 위 부사어들을 생략하고 읽어 보자. 그러면 시어의 묘미가 사라지고 무미건조한 뜻만 전하는 시가 될 것이다.

이렇게 시를 읽을 때는 부사어가 주는 느낌을 떠올려 보면 좋다.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 가던 길을 멈추고 …/어딘가 걸려 있고
현대를 이야기할 때 인간성 상실(喪失)이 많이 등장한다. 문명 발달과 함께 인간이 존엄성과 가치를 잃어버리고,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인간은 소외(疎外)되었다고 한다.

이 시에서도 인간 소외를 보게 된다. ‘홍은동 사거리’는 ‘털보네 대장간’이 ‘사라’지고, ‘현대 아파트가 들어’선 공간이다. 전통적 가치가 현대적 가치로 바뀐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사회의 기존 가치로부터 멀어지는 듯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인간 소외의 한 양상이다. ‘버스’는 자신이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진, ‘가던 길’은 ‘살아온 인생이/온통 부끄러워지고/… 똥덩이처럼 느껴’진 공간이다. 대량생산 체제에서 자신의 운명이 자기 스스로의 뜻이 아닌 외부의 힘에 결정되는 듯한 무력감, 존재의 가치가 낮아지는 느낌이 있는 공간이다. 그 낮은 존재감과 무력감 또한 인간 소외의 한 모습이다.

그런 곳을 벗어나 시적 화자는 ‘털보네 대장간’과 ‘어딘가’로 가서 걸려 있고 싶다고 한다. 인간 소외의 원인이 현대 산업 사회의 분업화에 있다. 미국의 포드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도입하여 노동자들의 분업을 통해 대량으로 자동차를 만들어내 값싸게 공급했다. 이러한 포디즘(fordism)은 대량생산 체제를 만들어 편리한 물질문명을 가져다줬지만, 인간 소외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털보네 대장간’은 ‘풀무질로 …/… 달구고/모루 위에서 벼리고/숫돌에 갈아/…/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드는 공간이다. 이는 전통적인 노동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인간은 소외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현대 산업 사회의 인간성 상실과 소외는 당시의 시를 이해할 때 활용하면 좋은 개념이니 알아 두자.
☞ 포인트
① 시어의 이미지를 환기하며 읽어야 하는 시가 있음을 유의하자.

② 꾸미는 말이 꾸밈을 받는 말의 속성(성질)을 나타낸다는 것에 착안해, 시어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연습을 많이 하자.

③ 부사어가 주는 느낌을 떠올리며 시를 읽도록 하자.

④ 현대 산업 사회의 시를 이해할 때 ‘인간성 상실’과 ‘소외’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자.

⑤ 포디즘이 대량생산 체제를 만들어 편리한 물질문명을 가져다줬지만, 분업화로 인한 인간 소외라는 부작용을 낳았음을 알아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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