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름 말하면 559억" 특이 조항 어겼다간…'오싹' [박신영의 일렉트로맨]

입력 2021-07-03 11:41   수정 2021-07-03 12:06



국내 전자업계에선 사내 보고서에서도 실명으로 언급하지 않는 기업이 있다. 바로 애플이다.
애플은 비밀유지조항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요구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납품업체와 계약할 때 비밀유지조항을 지키지 않을 경우 천문학적인 금액을 물어내도록 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 가운데에선 애플에 매출의 상당부분을 의존하는 곳들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같은 조항에도 계약을 맺거나 갱신한다.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부터 AP·이미지센서 등 각종 반도체까지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있는 적지 않은 우리나라 제품들이 애플 '아이폰'에 탑재된다.
애플을 애플이라 부르면 안돼
애플은 상당히 까다로운 고객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선 납품업체들이 공식적으로 '애플' 혹은 '아이폰'이라는 단어를 언급해선 안된다. 언론사 취재 과정에서도 해당 기업들은 "제발 업계 관계자가 언급했다고 써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납품 기업이 '애플' 혹은 '아이폰'을 언급한 게 알려지는 순간 애플과의 계약 취소까지 각오해야 한다. 계약서 안에 이미 비밀유지조항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계약이 파기되지 않더라도 천문학적인 규모의 배상금을 물어내야 한다.

과거 애플의 디스플레이 협력사였던 'GT어드반스드테크놀로지스'의 경우 비밀유지 계약 1건이 깨질 때마다 5000만달러(약 559억원)를 물어야 한다는 계약 조항에 동의한 것으로 유명하다. GT어드반스드테크놀로지스는 애플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시설투자를 했지만 애플이 요구한 품질을 충족하지 못해 수주에 실패하면서 파산까지 이르렀다.

애플에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는 국내 기업들은 때문에 다양한 이름으로 애플을 보고서에서 표현한다. 과일이름을 적는 가하면 '미주기업' 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보고서도 자칫 외부로 유출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실명 언급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애플은 철저한 비밀유지를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의 기준에 맞는 제품 생산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기업 관계자는 "원가와 기술력 문제 등을 이유로 애플이 요구한 부품을 생산하기 어렵다고 하면 "그래서 얼마를 주면 만들수 있겠냐"는 답이 돌아온다"고 말했다.그만큼 제품 품질에 대한 기준이 높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협력사를 보면 신제품 알수 있어…반드시 비밀 지키도록 요구
애플이 납품사에 비밀유지조항을 지키도록 이처럼 철저히 요구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로 해석된다. 우선 전세계 IT 기업들이 애플의 신제품이 어떤 모습일지 주목하는 가운데 납품사가 어디인지 알려지면 제품의 윤곽도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품회사마다 주특기가 있는데 애플 납품 업체가 누구인지 가늠하게 되면 애플이 신제품에서 어떤 기능에 집중할 지 알려질 수밖에 없다. 한 전자업체 관계자는 "애플이 차기작에 어떤 기능과 서비스를 담을지 알려질 경우 2위 업체들이 당장 따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납품업체들과의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애플은 한종류의 부품을 여러 업체로부터 납품받는다. 한 납품회사에 의존하게 될 경우 가격협상력이나 품질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봐서다. 그런데 불가피하게 한 부품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올라갔을 때 해당 기업이 가격인상 요구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스티브 잡스 비밀주의로 유명…무덤 위치도 안알려

애플의 비밀주의는 스티브 잡스의 영향이 크다. 스티브 잡스는 평소에도 비밀주의를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내부 직원들도 통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비밀유지 계약서는 물론이고 기밀 유출이 일어날 경우 관계자들은 디지털 포렌식까지 당해야 했다.

심지어 잡스의 무덤의 정확한 위치도 알려지지 않았다. 잡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시 서남쪽에 위치한 공동묘지인 알타 메사(Alta Mesa) 메모리얼파크에 묻혔다.

2011년 잡스가 사망한 당시 미국 언론사들은 잡스의 사망진단서까지 확보해 장지를 알아냈지만 잡스의 분묘 위치 등은 파악하지 못했다. 잡스의 무덤에 비석이 없기 때문이다. 알타 메사 메모리얼파크에는 비석이 없는 무덤이 많기 때문에 가족 외엔 잡스의 무덤 위치를 알기 힘들다.

업계에서는 애플의 철저한 비밀주의가 아이폰 등 제품에 대한 브랜드가치를 더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애플의 비밀주의는 소비자들의 궁금증과 기대치를 한껏 올리는 역할을 한다"며 "애플이 소비자 기대에 부응하는 한 이같은 비밀주의는 계속해서 '애플 팬덤'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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