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내년 8월 자본시장법 개정안 시행을 계기로 금융권 여성 고위직 확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취지다. 개정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자산 2조원 이상의 상장 금융사는 이사진을 특정 성별로만 구성해선 안 된다. 사실상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강제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금융사는 이 같은 조항을 적용받지 않는다. 대부분이 지주사 한 곳만 상장하고 나머지는 비상장 자회사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사 임원은 “현행 안대로 시행되면 금융지주 한 곳만 여성 이사 비율을 맞추면 되는 셈”이라면서도 “은행 등 주요 금융사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자발적으로 확충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은행 중에서는 기업은행이 가장 선봉에 서 있다는 평가다. 윤 행장은 지난 1월 인사에서 지점장 승진자 가운데 3분의 1(77명)을 여성으로 채웠다. 여성 부행장도 추가 선임해 ‘복수 여성 부행장 시대’를 열었다. 만약 여성 부행장이 추가로 배출된다면 국내 금융공기관 중 처음으로 여성 임원 20%(15명 중 3명)를 채울 가능성도 있다. 반면 산업은행(1명) 수출입은행(2명) 등은 여성 임원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다.
업계에서는 여성 고위직 확보가 국내 금융사들의 ESG 핵심 의제로 급부상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해외에선 금융 감독 및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고위직의 성별, 인종에 대한 다양성을 ‘S(사회)’의 주요 의제로 다루고 있다. 최근 카카오 네이버 한화 KT 등 국내 주요 기업들에서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잇달아 선임하기도 했다.
김상경 여성금융인네트워크 회장은 “고위직의 성별 다양성 문제는 당위적 문제가 아니라 성공적 기업문화 정착과 경영 리스크 감소와 직결된다”며 “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여성 및 유색인종이 포함됐는지를 투자 결정의 척도로 쓰는 글로벌 흐름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여성 임원 비중을 급격히 높이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반론도 나온다. 한 금융사 인사 담당 임원은 “현재로서는 여성 간부 수가 적다 보니 마땅한 임원 승진 후보를 물색하기가 힘든 구조”라며 “실력주의가 아닌 ‘할당제’가 된다면 능력 있는 남성 고위직을 역차별한다는 비판도 무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업은행은 전체 부점장급 이상 간부들 가운데 여성 비중이 10.3%에 불과하다. 다른 시중 은행들도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진 않지만 사정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훈/정소람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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