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능력주의 인사라도 제대로 해보라

입력 2021-07-05 17:28   수정 2021-07-06 09:37

미국에 살면서 아마존의 위력을 실감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웬만한 물건은 아마존에 다 있다. 게다가 아마존은 물건값도 싸고 배송도 빠르다. 35달러어치 넘게 사면 오전에 주문한 물건을 그날 오후에 받아볼 수도 있다. 광활한 미국 땅에서 어떻게 이런 ‘총알 배송’이 가능한지 신기할 정도다.

그런 아마존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에서 커지고 있다. 왜 그럴까. 전통 반독점 이론에선 아마존 같은 기업이 소비자에게 값싸고 좋은 물건을 공급한다면 아무리 독점적 지위를 갖더라도 별로 문제될 게 없다고 본다.

요즘은 기류가 달라졌다. 지금 당장 아마존이 싸고 좋은 물건을 공급한다는 이유로 독점적 지위를 제한하지 않으면 결국엔 경쟁자가 아마존을 통하지 않고는 시장에 접근할 수 없다는 새로운 반독점 이론이 뜨고 있다.
호평받는 美 32세 FTC 수장
이 같은 패러다임 변화의 중심에 선 인물이 지난달 미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 오른 리나 칸이다. 칸은 파키스탄 이민자 가정 출신의 32세 여성이다. 컬럼비아대 법대 교수로 일하다 106년 FTC 역사상 최연소 위원장에 발탁됐다.

FTC는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규제의 칼을 쥔 기관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칸을 FTC 책임자로 앉힌 건 그의 ‘실력’ 때문이다.

칸은 2017년 예일대 법학저널에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란 96쪽짜리 논문을 써 일약 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비영리단체 ‘미국 경제자유 프로젝트’의 새러 밀러 사무총장은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칸을 "반독점 분야의 시몬 바일스"에 비유했다. 바일스는 세계체조선수권대회 첫 여성 개인종합 3연패, 2016년 리우올림픽 체조 4관왕을 달성한 미국 체조계의 슈퍼스타다.

칸은 실무 경험도 풍부하다. 워싱턴DC에 있는 반독점 분야 싱크탱크에서 일했고 진보 성향 로힛 초프라 FTC 위원의 법률 자문관을 지냈다. 지난해까지 16개월간 이어진 미 하원 반독점소위원회의 빅테크 조사를 주도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칸을 FTC 수장에 앉혔을 때 어느 누구도 그의 실력에 토를 달지 않은 이유다. 칸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진 미 상원에서 69명의 찬성을 얻어 ‘초당적’으로 인준청문회를 통과했다.
25세 韓 청와대비서관은 논란
칸 얘기를 꺼낸 건 한국에서 25세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 임명 이후 ‘불공정 벼락 출세’ 논란이 커지고, 여권에서 “미국에선 32세 여성도 FTC 위원장을 한다”는 방어 논리가 나오는 걸 보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능력과 경쟁이라는 시장 지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6월 28일 확대경제장관회의)고 했다.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대목이다. 세계적 석학인 마이클 샌델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승자와 패자를 능력자와 무능력자로 나누는 ‘능력주의의 폭정’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능력주의를 대신할 만큼 공정하고 믿을 만한 평가 잣대가 있는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샌델이 능력주의를 비판하면서도 대안으로 ‘대입 추첨제’를 꺼낸 건 아직은 능력주의 비판이 허망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능력주의가 사라진 곳에선 오히려 학연 혈연 지연이나 ‘내 편, 네 편’을 따지는 불공정 인사가 판칠 수 있다. 청와대의 20대 청년비서관 발탁에 다수의 2030이 박탈감을 토로하는 이유도 그런 것 때문 아닌가. 어설픈 ‘보여주기식 인사’를 할 바엔 차라리 ‘능력주의 인사’라도 제대로 한 번 해보라. 바이든 대통령이 칸을 발탁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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