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현실을 짝짓는 ‘트윈’ 개념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기업활동에 적용한 사례는 ‘일방향’ 시뮬레이션 정도에 그쳤다. 정밀한 공정 전체를 가상공간에 구현해 작동시키기엔 컴퓨팅·통신기술의 진화가 더뎠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5일 미국 엔지니어링닷컴 조사에 따르면 글로벌기업 250여 곳 중 73%는 디지털트윈을 도입 중이거나 도입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막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5세대(5G) 다중접속 에지컴퓨팅(MEC), 인공지능(AI), 디지털센서 등 기술 환경의 발전이 초고속으로 전개된 덕분이다.
반면 디지털트윈을 통하면 문제가 간단해진다. 가상공간에서 온갖 변수를 적용해보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 곧바로 현실에 적용하면 된다. 실제 장비를 돌릴 경우엔 AI가 각 시나리오를 학습하기까지 수백 시간이 걸릴 일을 디지털 ‘쌍둥이’는 수초~수분 만에 학습한다.
전투기와 선박 등 초고가, 고비용 제품을 제조하는 기업들도 디지털트윈을 속속 채택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지난 4월 첫 시제기를 공개한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 KF-21 개발 과정에 디지털트윈을 썼다. 단순한 3차원(3D) 그래픽으로 설계했다는 게 아니다. 전투기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과 장치를 가상과 현실에 마련해 놓고 설계·엔지니어링·제조 과정을 한 플랫폼에 연결했다. 독일 지멘스도 비슷하다. 실제 항공기 프로펠러를 가상 모델과 연결하고, 풍속 등에 따른 움직임 변화를 실시간으로 디지털트윈에 반영한다. 디지털트윈이 더 안정적인 프로펠러 각도를 계산하면 실제 모델에 이를 반영하는 식으로 양방향 공정을 쓰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달에 지방자치단체 대상 디지털트윈 시범사업 공모를 열어 약 5개 지역을 선정할 계획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전 수요 조사 결과 수질오염·악취 문제 해결법을 찾고 에너지 관리를 선제적으로 하기 위해 디지털트윈을 쓰고 싶다는 곳이 많았다”고 말했다. 공장 건축 허가를 내주기 전에 공장이 일대 수질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알아보는 식이다. 디지털트윈을 쓰면 일대 물과 공기 흐름 등까지 시뮬레이션에 반영할 수 있어 기존 방식보다 훨씬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다.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는 미국 프레이밍햄 생산설비에 디지털트윈 기술을 적용해 연간 에너지소비와 탄소배출량을 약 80% 줄였다. 화학물질 사용량은 94% 감소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액센츄어는 건설, 전기전자, 소비재, 교통, 생명과학 등 5개 분야에서 디지털트윈 방식이 확산할 경우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이 7.5억t 감소할 것이라고 올초 내다봤다. 작년 세계 전체 탄소배출량의 23.8% 수준이다.
선한결/김형규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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