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해외 러시에 '국제분쟁팀' 키우는 로펌

입력 2021-07-05 18:13   수정 2021-07-06 10:49

올해 초 길쭉한 막대기 모양의 과자를 판매하는 제과업체 R사는 5년간 이어졌던 일본업체와의 ‘표절 논쟁’에서 승리를 거뒀다. 미국 제3연방순회항소법원이 “일본 제과회사가 17년 먼저 내놨던 비슷한 과자의 모양은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이 분쟁에서 판정승을 거둔 R사는 미국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국내 제과업체 R사를 대리해 미국 항소심에서 승리를 이끈 주역은 태평양에서 ‘이디스커버리(e-Discovery)’ 업무를 수행하는 ‘ENI’ 팀이다. 이디스커버리란 미국 소송의 한 과정인 ‘증거개시절차(디스커버리)’에 전자 문서를 뜻하는 ‘이(e)’를 붙인 것으로, 이메일이나 데이터베이스 등 각종 전자 자료를 증거로 내놓는 것을 뜻한다.

디지털로 업무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일반화되고 미국 법원이 이를 공식 자료로 채택하면서, 로펌업계에서 ‘이디스커버리’는 새로운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로펌업계 ‘이디스커버리’ 확대 나서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율촌은 이달 초 ‘율촌 이디스커버리 센터’를 열었다. 율촌 이디스커버리 센터는 국제중재 분야의 전문가인 백윤재 변호사가 센터장을 맡았다. 여기에 반도체, 통신, 디스플레이 관련 국제 소송 경험이 있는 이승목 외국변호사와 국제분쟁 공통팀장인 김용상 외국변호사 등 15명의 국제 소송 전문가가 대거 합류했다.

태평양도 지난해 관련 팀을 확대 개편했다. 기존의 디지털 포렌식팀을 ENI팀으로 바꾼 것이다. 조직 규모를 20여 명 늘려 50여 명까지 키웠고 최첨단 장비도 마련했다. 네이버 부사장 출신인 김광준 변호사가 팀장이다.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강기중 변호사와 강한길 외국변호사, 김세진 외국변호사(미국)도 ENI팀에 들어왔다. 태평양 측은 “이디스커버리를 위해선 한꺼번에 많은 전문가가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제 분쟁 급증…전자자료 중요성↑
국내 로펌업계가 이디스커버리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은 최근 국내 기업이 연관된 미국 내 소송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제약업계를 비롯해 정보기술(IT) 업계, 자동차 제조사들이 로펌 문을 두드린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업종인 만큼 특허 분쟁이 빈발하고, 미국 법원에서 전자문서를 내놓고 시비를 가리려는 경우가 급증했다”는 게 법조계 설명이다.

국내 기업이 연관된 미국 내 소송은 늘고 있다. 2016년 88건에 불과했던 소송은 2년 만인 2018년엔 131건으로 증가했다. 2019년(109건)엔 감소했지만 앞으로 상표권·디자인권 등 지식재산권(IP) 관련 분쟁을 중심으로 소송 건수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이디스커버리 기술·자문 시장도 꾸준히 커지고 있다. 2012년 5조905억원에서 지난해 16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해외 기업과의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선 전자문서 증거 개시 절차를 전략적으로 수립해야 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 이디스커버리(e-Discovery)

디스커버리 제도는 미국의 소송절차 중 하나로, 소송 당사자들이 상대방이 갖고 있는 정보를 요구할 수 있고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요청대로 서로에게 자료를 제공해야 하는 절차다. 특히 이(e)디스커버리는 당사자들이 주고받는 정보에 이메일, 소셜미디어, 웹사이트 데이터, 워드·엑셀 파일, 오디오·비디오 파일 등의 전자정보를 포함시킨 것이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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