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영역 침범'에…화학사 "脫나프타" 반격

입력 2021-07-05 17:41   수정 2021-07-06 02:14


국내 주요 석유화학 회사들은 원료 대부분을 정유사로부터 받아서 썼다. 휘발유와 성분이 비슷한 나프타다. ‘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프로필렌 등은 나프타를 분해해 만든 것이다. 최근 이런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정유사가 나프타 생산에 머물지 않고 에틸렌, 프로필렌 등 화학제품까지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석유화학 회사들은 자신들의 ‘안방’에 들어온 정유사들이 마뜩잖았다. 이들은 나프타 대신 다른 원료를 찾기 시작했다. 액화석유가스(LPG)를 나프타의 강력한 대안으로 삼고 대대적인 설비 전환에 나섰다.

롯데 “LPG 비중 50%까지 높일 것”
롯데케미칼은 약 1400억원을 투자해 전남 여수공장과 서산 대산공장의 ‘연료 설비 효율화’에 나선다고 5일 발표했다. 핵심은 원료에서 나프타 비중을 낮추고 LPG 비중은 높이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공장의 LPG 원료 비중은 현재 20%에 불과한데, 내년 말까진 40%로 높일 것”이라며 “2023년 이후엔 50%를 넘겨 나프타보다 LPG를 더 많이 쓸 계획”이라고 했다.

롯데케미칼은 에틸렌 생산능력 국내 1위 기업이다. 국내 연 230만t 규모 생산설비를 보유 중이다. 미국 말레이시아 등 해외 생산기지까지 합하면 연 450만t에 달한다.

롯데케미칼뿐만이 아니다. 에틸렌 연 330만t 생산설비를 보유한 LG화학도 2018년 여수공장에, 2019년 대산공장에 LPG 전용 설비를 구축했다. 최근 증설을 끝낸 여수공장 일부 설비는 최대 50% 이상 LPG를 쓸 수 있다. 현재 비중은 20%에 불과하다. 나프타 대신 바이오 원료도 투입할 예정이다. 작년 11월 핀란드 네스테와 바이오 원료 공급 파트너십을 맺었다. 한화토탈이 지난 5월 1500억원을 투자해 증설한 에틸렌 설비도 원료가 LPG다. 나프타 분해시설 대신 가스 전용 분해시설을 갖췄다.
정유사, 화학설비 가동 잇달아
석유화학 회사들이 ‘나프타 독립’에 나선 것은 잠재적 경쟁자로 부상한 정유사를 견제하려는 포석이다.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나프타를 생산해 외부에 파는 대신 원료로 써서 화학제품을 만들고 있다”며 “정유사에 나프타를 의존한다면 장기적으로 경쟁사를 돕는 꼴이 된다”고 했다.

정유사들의 석유화학 사업 진출은 공격적이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각각 2조원 넘게 투자해 연내 나프타 분해시설을 완공한다. 에틸렌 기준 GS칼텍스는 연 75만t, 현대오일뱅크는 연 85만t 규모다. 에쓰오일은 울산에 이보다 두세 배 큰 6조~7조원 규모의 나프타 분해시설 투자를 검토 중이다. ‘샤힌 프로젝트’로 이름 붙은 이 사업은 이사회의 최종 결정만 남겨놓고 있다.

정유사들의 화학 사업 투자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전기차, 수소차 등의 보급으로 휘발유와 경유 판매가 계속 줄고 있는 데다 코로나 사태로 항공유 수요까지 1년 넘게 부진하기 때문이다.

원가를 낮추기 위한 측면도 있다. LPG는 나프타에 비해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나프타 가격을 100으로 했을 때 LPG 가격은 2018년 90, 2019년 87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해 기록적인 한파 탓에 LPG값이 급등해 103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이는 일시적인 것이었다.

올 들어 유가가 오르자 나프타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올 7월 첫째주 기준 t당 681달러까지 상승했다. 한 달 전에 비해 53.6%나 오른 것이다. 최근 6개월간 상승률은 194.1%에 달한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것이란 전망 속에 나프타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업계에선 본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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