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의 脫부동산…"디지털 자산이 미래다"

입력 2021-07-06 17:42   수정 2021-07-07 01:02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서울 성수동의 이마트 본사 매각을 결정했다. 이베이코리아 인수에 이어 또 한 번의 승부수다. 유통과 부동산으로 자산 23조원(1분기 말 기준) 기업으로 성장한 이마트의 ‘탈(脫)부동산’ 선언이다. 상장으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 쿠팡 등 e커머스(전자상거래) 신흥 강자들의 도전을 맞아 전통 유통기업이 자산 유동화로 ‘쩐(錢)의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마트 본사 내놓은 정용진의 승부수
이마트의 본사 매각 가능성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흘러나왔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2008년 이전한 성수동 건물을 유동화하는 데 난색을 나타냈다. 본사·본점의 상징성이 컸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이 서울 잠실 월드타워나 소공동 백화점 본점을 어지간해서는 손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지난달 30일 마무리된 이베이코리아 인수가 변화의 계기가 됐다. 3조4400억원을 인수 자금으로 투입하면서 보유 현금이 바닥을 드러낸 만큼 실탄 충전이 필요해졌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이베이코리아 인수용 자금은 서울 가양점 매각 및 경기 부천 스타필드시티를 담보로 충분히 조달했다”며 “앞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한 옴니 채널을 구현하기 위해 추가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창사 이래 첫 조 단위 인수합병(M&A)를 단행하면서 정 부회장이 “얼마에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짜리 회사로 키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와 관련, 정 부회장은 ‘디지털 자산’ 개념을 임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부동산을 깔고 앉아 있기보다 이를 e커머스 등 온라인에 투자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쿠팡만 해도 창업 첫해인 2011년의 기업 가치가 8000억원에 불과했으나 올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이후 약 80조원(5일 기준 시가총액)의 회사로 성장했다. 이에 비해 이마트의 자산은 10년간 10조원에서 23조원으로 불어나는 데 그쳤다. 2012년 1월 33만원까지 올랐던 이마트 주가는 현재 반토막 나 있다.
이마트 본사 현금화 적기 판단
성수동 본사 매각 추진을 계기로 이마트의 자산 유동화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마트 경영진은 지난해부터 오프라인 점포에 대한 매각 후 재임차(세일앤드리스백) 전략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수동 일대의 부동산 가치 상승도 매각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성수동은 싱가포르투자청 등 국내외 부동산 투자사들이 앞다퉈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땅값이 3.3㎡당 1억원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금싸라기 땅 위의 건물에서 라면 팔아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국내외 기관투자가도 부동산이 아니라 본업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마트가 벤치마킹 모델로 삼고 있는 월마트 역시 오프라인 점포에 대한 소유 비중이 56%(2020년 회계 기준, 국내외 포함)에 불과하다. 국내에선 롯데그룹이 2019년 5월 롯데백화점 강남점을 리츠(부동산투자 전문 펀드)에 매각하는 등 자산 유동화를 통해 국내외 투자자로부터 3조532억원을 확보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롯데정보통신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센터를 롯데리츠 자산으로 편입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는 등 자산 유동화에 적극적”이라며 “쇼핑뿐만 아니라 화학 분야에서도 수소, 배터리 등 신산업 M&A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자산 유동화는 201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삼성, SK그룹 등은 일찌감치 본사 건물을 매각해 자산 효율을 높이고 있다. 신세계, 롯데쇼핑 등 유통 기업들이 탈부동산의 마지막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엔 호텔&리조트 업체들도 자산 유동화를 추진 중이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올초 전남 여수 벨메르호텔을 매각 후 임차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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