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마무리된 이베이코리아 인수가 변화의 계기가 됐다. 3조4400억원을 인수 자금으로 투입하면서 보유 현금이 바닥을 드러낸 만큼 실탄 충전이 필요해졌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이베이코리아 인수용 자금은 서울 가양점 매각 및 경기 부천 스타필드시티를 담보로 충분히 조달했다”며 “앞으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결합한 옴니 채널을 구현하기 위해 추가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창사 이래 첫 조 단위 인수합병(M&A)를 단행하면서 정 부회장이 “얼마에 사느냐가 아니라 얼마짜리 회사로 키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와 관련, 정 부회장은 ‘디지털 자산’ 개념을 임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 부동산을 깔고 앉아 있기보다 이를 e커머스 등 온라인에 투자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쿠팡만 해도 창업 첫해인 2011년의 기업 가치가 8000억원에 불과했으나 올 3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이후 약 80조원(5일 기준 시가총액)의 회사로 성장했다. 이에 비해 이마트의 자산은 10년간 10조원에서 23조원으로 불어나는 데 그쳤다. 2012년 1월 33만원까지 올랐던 이마트 주가는 현재 반토막 나 있다.
성수동 일대의 부동산 가치 상승도 매각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성수동은 싱가포르투자청 등 국내외 부동산 투자사들이 앞다퉈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땅값이 3.3㎡당 1억원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핫플레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금싸라기 땅 위의 건물에서 라면 팔아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국내외 기관투자가도 부동산이 아니라 본업에서 돈을 벌 수 있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마트가 벤치마킹 모델로 삼고 있는 월마트 역시 오프라인 점포에 대한 소유 비중이 56%(2020년 회계 기준, 국내외 포함)에 불과하다. 국내에선 롯데그룹이 2019년 5월 롯데백화점 강남점을 리츠(부동산투자 전문 펀드)에 매각하는 등 자산 유동화를 통해 국내외 투자자로부터 3조532억원을 확보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롯데정보통신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센터를 롯데리츠 자산으로 편입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는 등 자산 유동화에 적극적”이라며 “쇼핑뿐만 아니라 화학 분야에서도 수소, 배터리 등 신산업 M&A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자산 유동화는 2010년대부터 본격화됐다. 삼성, SK그룹 등은 일찌감치 본사 건물을 매각해 자산 효율을 높이고 있다. 신세계, 롯데쇼핑 등 유통 기업들이 탈부동산의 마지막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엔 호텔&리조트 업체들도 자산 유동화를 추진 중이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가 올초 전남 여수 벨메르호텔을 매각 후 임차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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