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작은 빵집이었다. 1945년 고(故) 허창성 SPC그룹 명예회장은 황해도 옹진에 ‘상미당’을 열었다. 해방 후 혼란스러웠던 1948년 허 명예회장은 월남, 현재 방산시장 부근인 서울 을지로4가에 다시 자리 잡았다. 경쟁이 치열한 서울에서 살아남고자 고심 끝에 이듬해 ‘무연탄가마’를 개발했다. 열기를 골고루 받는 가마를 통해 한꺼번에 많은 양의 빵을 만들 수 있었다. 빵집은 번창했다.
그로부터 76년이 흐른 2021년. 작은 빵집은 세계에서 7000여 개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지난해 매출은 6조5000억원. SPC삼립,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 쉐이크쉑 등 브랜드를 운영하는 종합식품회사로 성장했다. SPC그룹은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2만 개의 매장을 운영, 매출 2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이듬해인 1964년은 삼립제과공사가 비약적으로 도약한 해다. 국내 최초로 식빵 제조의 자동화를 이뤄냈다. 같은 해 처음으로 비닐봉지에 담은 ‘크림빵’을 선보였다. 두 제품은 대박을 쳤다. 삼립 대방동 공장엔 아침부터 빵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 긴 줄을 섰다.
1968년 서울 가리봉동에 대규모 생산설비를 갖춘 제빵 공장을 추가로 짓고, 삼립식품공업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꿨다. 1972년 삼립식품은 샤니의 전신인 한국인터내쇼날식품주식회사를 설립했다. 2세인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샤니를 독립시켜 지금의 SPC그룹을 키워냈다.
허 회장은 기존 양산빵 사업 이외에 파리크라상,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등 프랜차이즈 형태의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 잇달아 성공시켰다. 그는 2세 경영자임에도 ‘창업형 기업가’로 불린다.
유학에서 돌아온 허 회장은 1983년 국내 제빵업계 최초로 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는 2012년 ‘이노베이션 랩’으로 명칭과 조직을 바꿨다. SPC그룹은 매년 이노베이션 랩 등 연구개발(R&D)에 500억원가량 투자한다. 매달 평균 500개 이상의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엄선한 제품만 시장에 선보인다.
SPC그룹은 식품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서울대 내에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연구소의 대표적인 성과는 토종효모의 발굴이다. 10여 년간 1만 종 이상의 한국 토종 미생물자원을 분리하고 균주 특성을 분석한 끝에 2016년 한국 전통 누룩에서 토종효모(SPC-SNU)를 발굴해냈다. 허 회장은 당시 “우리 강산에서 발굴한 토종효모로 만든 가장 한국적인 빵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게 됐다”며 크게 기뻐했다.
이렇게 쌓은 기술력을 토대로 SPC그룹은 해외 시장 진출에도 성공했다. 2004년 중국 진출을 시작으로 미국, 프랑스, 싱가포르, 베트남, 캄보디아 등 6개국에서 430여 개 파리바게뜨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14년엔 ‘빵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프랑스 파리에 진출해 ‘놀라운 도전’이란 평가를 받았다. SPC그룹은 2030년까지 미국에서만 매장을 1000여 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섹타나인은 멤버십 마케팅 서비스인 ‘해피포인트’와 ‘해피오더’ ‘해피콘’ ‘해피마켓’ 등 모바일커머스 서비스 사업을 키우고 있다. 간편결제 솔루션 ‘해피페이’를 선보이는 등 핀테크 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빅데이터 인프라를 활용해 매장 영업을 지원하는 마케팅 플랫폼과 증강현실 기반 마케팅 앱도 내놓을 계획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배달, 픽업 서비스도 확대하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2018년 9월 딜리버리·픽업 서비스인 ‘파바딜리버리’를 선보여 2800여 개 매장에서 운영 중이다. 파리바게뜨의 월평균 딜리버리 매출은 초기에 비해 15배 이상 급증했다. 파리바게뜨는 파바딜리버리를 통해 매장별 빵 나오는 시간 정보를 제공하는 ‘갓 구운 빵’ 서비스를 업계 최초로 도입하기도 했다.
배스킨라빈스도 2016년 2월부터 딜리버리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1400여 개 매장에서 제공하는 해피오더 매출은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4배 이상 늘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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