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행장은 1970년 한일은행에 입행해 2008년 우리은행장으로 선임돼 2년6개월여 재임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한파를 견디며 우리은행에 ‘정도경영’의 틀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011년 친분이 있던 한학자에게 ‘의로운 기개가 우뚝 솟은 거산고봉을 닮으라’는 의미의 ‘의산(義山)’이라는 호를 받았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전·현직 임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의산포럼의 회원이 돼 분기별로 식사하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전 행장은 2011년 우리은행장에서 물러난 뒤 미소금융재단 이사장, 신용회복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우리다문화장학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 ‘사람은 뒤꼍으로 물러나지만 글은 영원히 남는다’는 생각에 작년 12월 회원들에게 수필집을 내자고 권유했고 19명의 글을 엮었다. 이 전 행장은 신복위원장 시절 직원 127명 전원의 글을 모아 책을 발간한 경험이 있다.
이 전 행장은 “짧게는 30년, 길게는 40여 년 은행밥을 먹은 이들이 삶의 고단함에서 한 발짝 떨어져 느낀 이야기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이 전 행장은 ‘아호(雅號)로 불러줘’란 제목의 글에서 “서로를 아호로 부르면 팍팍한 세상살이에서 부드럽고 친밀감 있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썼다. 의산포럼 회원들도 서로 직책 대신 호를 부르고 있다.
이 전 행장은 결혼 20여 년 만에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이후 20년간의 소회를 담은 김장학 전 광주은행장의 애끓는 사부(婦)곡(아내의 유언을 따르지 않은 까닭)과 김병효 전 우리아비바생명(현 DGB생명) 대표의 ‘안보이는 것이 보일 때’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김 전 대표는 ‘자리를 맡으면 돋보이는 일을 추진하거나, 윗사람이 듣기 좋은 말만 하거나 좋아할 만한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조직에 몸담고 속해 있을 때에는 미처 보이지 않더니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니 이제야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찌 된 일일까’라고 책에 썼다.
금융권에 몸담은 후배들에겐 ‘공부’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책을 통한 공부만이 공부가 아니다”며 “은행 일에 매몰되지 말고 조찬, 포럼 등 외부 활동을 해야 시야를 넓히고 실력을 갖출 수 있고, 실력이 있어야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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