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학논문 검색엔진 퍼브메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간 의료 분야 인공지능(AI) 논문 수는 약 8000건에서 1만2000건으로 50% 가까이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AI 기반 의료 임상시험 수는 거의 그대로였다. AI 기술 연구가 바쁘게 이뤄진 반면 현실 적용은 제자리 걸음에 그쳤다는 얘기다.
7일 열린 ‘AI미래포럼(AIFF) 웨비나’에서 한국과 미국 AI 전문가들은 각국 AI 현실이 아직 기대 이하라고 입을 모았다. 도시계획, 의료, 경영, 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AI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실제 활용은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최고·최대 AI 전문가 네트워크인 AI미래포럼은 지난달까지 세 차례 토론회를 열었고, 이날 처음으로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함께 네 번째 웨비나를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AI에 대한 기대와 현실’을 주제로 열린 이번 웨비나에서 미비한 AI 관련 규정이 현실 적용을 어렵게 하는 주요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김도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의료 분야는 AI 관련 포괄적 가이드라인이 아직 없다 보니 시범 적용에 나설 수 없고, 이 때문에 실증 사례를 확보할 수 없어 기술이 신뢰를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말했다. 현행 한국 지식재산권법과 미국 특허법이 AI 알고리즘을 특허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것도 기술 적용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했다. 특허권이 보장되지 않다 보니 연구자나 기업이 당국 심사를 위해 자체 개발 AI 알고리즘을 공개하기 어렵다.
일부 분야는 AI 기술 발전이 아직 충분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오혜연 KAIST 교수는 자연어처리(NLP) AI 모델이 아직 상용화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기준점 격인 벤치마크가 수백 가지 언어별로 필요하고, 문화권별로 언어에 따른 편견을 제거해야 하는 등 각종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설명이다. 김찬우 삼성전자 상무는 “AI 열풍이 거품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기술 성과를 객관적으로 보고 과도하게 포장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각 분야 AI 플랫폼과 인프라가 제각각이다 보니 서로 협업이 어렵다는 고민도 나왔다. 김선호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시가 도시 청소에 AI를 적용한 사례를 소개했다. 청소를 담당하는 부서가 막대한 거리 현황 데이터를 수집했지만 데이터나 분석 결과를 다른 부서 등에 공유하긴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김선호 교수는 “스마트시티에 AI를 접목하려면 다양한 응용을 지원하는 통합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윤석 텍사스 A&M대 교수 역시 “분야마다 기껏 만들어 놓은 AI 모델을 다른 플랫폼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가 장기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종옥 캘리포니아주립대(CSU) 교수는 “학계와 산업계가 서로 협력을 늘려 성과나 장비 등을 공유하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제안했다.
성낙호 네이버 클로바 책임리더는 초거대(하이퍼스케일) AI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AI 모델을 일반화해 하나의 대형 플랫폼으로 만들고, 분야별로 막대한 데이터를 확보해 운영하면 파급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성 책임리더는 “이를 통하면 소상공인 등 AI 개발자가 아닌 사람도 쉽게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이시은/배성수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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